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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사자 Jan 29. 2024

운전을 포기하자 꿈이 남았다.

 나는 운전을 꼭 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잠깐 병이 도져 회사를 퇴직 했을 때 다시 일을 알아보려 하니 운전을 하지 않고는 어디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위기의식은 자연히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이유가 또 있었다. 저녁 아르바이트 사장님이 퇴근 때마다 차를 태워주셨는데 나는 정말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눈치가 없다. 그것도 심하게. 그런 내가 갑자기 직장 상사를 모시고 단둘이 차를 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매일. 생각만 해도 불편하지 않은가?      


 나는 게으르고 내성적이지만 의외로 행동파이다. 나에게 닥친 힘겨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30년 장롱면허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차를 샀다. 운전을 할 줄 아느냐고? 그건 아니다. 내 생각에는 차만 사면 운전을 할 줄 알았다.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랬고, 우리 집 식구들은 나름 운전을 잘해서 운전대만 잡으면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곤 했다. 혼자서는  운전은 혈통 속에 내려오는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있게 일단 저질렀다. 2011년산 은색 모닝, 내 차를 만났을 때 나는 기쁜 마음에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迎 맞이할 영 福 복 복 ‘영복’이라고.      


 그러나 슬프게도 운전은 나의 운명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했다. 운전학원에서 연수도 받고, 아는 지인들을 통해 추가로 운전을 배웠으며 6개월 정도는 혼자 매주 토요일 3시간 출퇴근하는 도로를 다니며 열심히 연습했다.     


 차를 사주는 데 도움을 주었던 친구는 일단 출퇴근 시간에 차를 가지고 나가라고 충고했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연수를 받고 연습을 해도 운전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갈 때마다 매번 큰 사고가 날뻔했다. 자주 신호등을 못 보고 놀라서 급증거를 하고, 커다란 덤프트럭과 동시에 같은 차선으로 진입하려고 차선 변경하다 깜짝 놀라고, 교차로에서 전방주시를 하지 않고 중앙선 너머의 차량으로 돌진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차는 안전하지 않았다. 나는 늘 생각했다. 괜찮을까? 나는 도로의 무법자였고, 예비 살인자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당시 막 운전을 다시 시작한 다른 친구에게 내 고민을 전하면 그 친구는 노력하지 않는다고 나를 폄하하곤 했다. 자꾸 해봐야 는다는 것이다. 내가 쉽게 포기하는 것은 돌아갈 구석이 있고, 책임져야 할 자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렇게 설득하면 나는 힘없이 “알았어. 다시 해볼게.” 라고 말하곤 똑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 운전 연습을 하는 토요일 오후 3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운전연습과는 별개로 꾸준히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 매주 일요일 오전까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작성해서 보내고, 줌으로 과외선생님과 수업을 했다. 주중에는 주야간으로 일했기 때문에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주말뿐이었다. 사실 토요일 뿐이었다. 일단 차를 산 후였다. 게다가 운전 독립을 하겠노라 선언도 했고, 나이가 들어서는 한 번 시작한 걸 쉽게 포기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래서 꾸역꾸역 꾸준히 운전 연습을 해왔지만 계속 집중해서 글을 쓰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이 커져갔다. 출퇴근 시간에 용감하게 차를 끌고 나갔으면 구지 토요일 오후를 차와 함께 씨름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3주를 운전하지 않고 차를 세워두고 나서 나는 진지하게 이 토요일 오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 가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야만 했다.       


 친구는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내가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다. 겁이 많고 주의 집중이 산만하여 운전을 잘 하지 못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숙련되면 친구 말대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말이면 꿈처럼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 동명항에 회를 뜨러 갔다 올 수 있게 될 것이다. 친구에 의하면 내가 운전을 포기하는 이유는 의지가 박약하고 비빌 언덕이 있어 팔자가 편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견해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에 노력을 다할 수는 없고, 또 다 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아무리 힘들고, 누가 알아주지 않고,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도 꾸준히 놓지 않고 이른바 노력하는 분야가 다 다르다 . 지치지 않고, 계속 재밌는,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는 그 어떤 것이라야 우리는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아 말 그대로 노력을 한다.      


 이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꿈이라는 것이 별 것은 아닐 것이다.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그 무언가를 찾아 앞으로 쭉 달려가면 그 끝 어디쯤엔가 우리가 있어야 할 이른자 내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최고가 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래도 내 인생에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것이 충만하지 않을까?       


 차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남겼다. 서툴고 적응이 안 되던 운전 때문에 손을 내밀어야 할 때는 반드시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용기뿐은 아니었다. 삶의 의지라고 말하고 싶다. 내 손을 잡아준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에는 조건 없이 누군가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수용될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 아니면 그들이 착하기 때문이라기보다 내가 몰랐던 어떤 사람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 자세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인생의 따듯함을 알려주었고, 지금껏 하지 못한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가치는 인생은 유한하고, 주어진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내 시간을 할애해서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았다. 다른 때에는 산만하고 늘 뭔가 빈틈이 있는 나지만 그 일을 할 때면 집중해서 몰두하게 된다. 나는 그 일이 재밌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이다.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은 그런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마음으로부터 깊이 부러워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내가 안타깝지는 않다. 부족하다 모자라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내 인생이 있고, 오늘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분명히 알고 있다. 내일의 나의 가치는 오늘과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내일을 만드는 것은 열심히 살아간 오늘일 것이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 내가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이라도 굳게 믿으며...


 떠나보낸 내 첫 차이자, 마지막 차인 영복이에게 깊은 감사를 보낸다. 안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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