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남자는 집안일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본인이 꼭 해야 하는 상황, 예를 들면 마누라가 출산을 하러 집을 비웠다든가 하는 그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을 때 외엔 거의 설거지조차도 않는 그런 남자이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 출산했던 그 시기 정말 혼자서 어찌 보냈는지 너무 궁금하다..ㅎ)
그런데 신기하게도 쓰레기 버리는 일은 도맡아 잘 처리해 준다. 재활용 쓰레기도 깨끗하게 라벨을 떼고 분리수거를 완벽하게 처리해 준다.
난 사실 좀 귀찮은 것, 가령 일일이 라벨을 뗀다거나 종이 박스의 테이프를 떼어버린다든가 하는 일은 귀찮아 한쪽에 그냥 두는 편이었다. 그러면 집안일을 그렇게 싫어하는 그 남자가 한쪽에서 잘 처리하고 모아두고 처리해 준다.
식용유병도 내가 한쪽에 그냥 두면 라벨을 깨끗이 떼어내곤 쓰레기 봉지에 거꾸로 엎어놓아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내용물이 다 쏟아내어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처리한다. 컵라면이나 배달용기 같은 것도 최대한 깨끗이 씻어서 분리해 두었다가 한꺼번에 배출한다.스팸통에 붙은 라벨은 뜨거운 물을 부었다가 접착제를 녹인 후 떼어내면 말끔하게 벗겨지는 것도 남편에게 배웠다.음료수병, 생수병 같은 것은 아예 한쪽에 커터 칼을 놓아두고 라벨을 스윽~ 한 번 그어 낸 후 벗겨 내어 모아둔다.
옆에서 지켜만 보다가 언젠가 나도 한번 해보았다. 뭐지? 이거 이렇게나 잘 떼어지는 거였어? 실제로 벗겨보니 예전의 그 접착제가 아닌듯했다. 분리배출이 생활화되면서 라벨의 접착제도 진화된 것이 분명했다. 개인의 힘만으론 변화가 완성될 수 없다. 기업이 함께 변화하니 수월해졌다.
요플레의 라벨에는 물로 씻기 전에 라벨을 떼어달라는 안내 문구도 쓰여있는데 물에 젖으면 잘 안 떼어짐을 직접 경험해 본 뒤론 요플레 먹는 요령도 생겼다. 라벨 먼저 떼어내고 먹기~!
라벨 떼어내는 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스르륵~ 부드럽게 벗겨질 때 쾌감이 있다. 어느 때부터는 나도 옆에 남자 따라 용기를 깨끗이 씻은 다음 라벨을 떼고 있었다. 뭔가 유익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안 해보았다면 몰랐을 재미나면서 뿌듯한 행위. 이제는 가끔 내가 분리 수거함에 다녀오기도 한다. 이러다 우리 남편 너무 편해지는 거 아니야?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