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즐. 남 : 고통을 즐기는 남자를 줄인 말로 내가 이 남자에게 붙여 준 별명이다. 웬만한 통증 가지고는 이 남자의 발걸음을 병원으로 인도하지 못하여 내가 붙여줬다. 몸살감기에 걸려도 끙끙 앓고만 있는다. 자기는 하루 이틀 이러고 있다가 낫는다며 판피린만 사다가 열심히 먹는다. 허리가 아프다 하다가도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란다. 다래끼가 나도 나더러 눈 옆의 염증을 바늘로 터뜨려 달라고 하지 병원이나 약국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몸은 자기가 안단다. 난 이렇게 무식한 남자인 줄 결혼 전엔 정말 몰랐드아~~ 그냥 엄살 없이 불편한 상황을 잘 참는다고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건 결혼 전이고 결혼해서 같이 살다 보니 그건 잘 참는 장점으로만 보이지 않고 무식한 고집으로만 보이니 쉽고 빠른 선택을 하지 않는 남자가 답답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느정도 적응 돼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같이 산다. 같이 살려면 적당히 눈도 감을 줄 알아야 한다.]
마늘을 작은 절구에 다져서 냉동실에 소분하여 넣어뒀다가 한통씩 꺼내어 사용하고 있다. 마늘이 떨어질 때 즈음 새로 마늘을 다져서 미리미리 준비를 해둔다. <삼시 세 끼>에서 마늘 장인이 유해진 씨라면 우리 집 마늘 담당은 남편이다.
저질체력인 이 몸은 그 타이밍이 잘못 어긋날 때 가끔 마늘을 절구에 빻곤 하는데 팔이 곧 아파와서 당장 필요한 만큼만 빻아 사용하고 나머지는 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부탁한다. 한 번은 시작한 김에 다 처리하겠다고 욕심을 부렸다가 그만 팔이 후들거리는 지경까지 이르러 그 뒤론 감히(?)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
집안일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남편이 유일하게 처리해 주는 몇 안 되는 일중 하나가 바로 마늘 빻기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한꺼번에 많은 양을 처리하면 단순한 작업 같아도 꽤나 힘이 든다. 그래서 난 될 수 있으면 적당한 양이 포장된 것을 고르려고 하는데, 한사코 이 남자는 대용량으로 사라고 잔소리다. 십원이라도 더 싸다는 것이 이유이다. 그러곤 자신 있게 말한다.
"내가 다 빻아 줄게!"
믿음직스러운 말로 들릴 수 있으나 내 귀엔 무식한 말로 들린다. 왜 사서 고생하나... 이런~
오늘은 혼자서 마트에 갔기에 작은 용량을 집어와도 상관없지만 나중에 들을 잔소리가 윙윙거려 그냥 대용량을 들고 와버렸다.
그러곤 일부 편 썰어 소분하고 통마늘로 쓸 것 구분하고 급히 저녁 준비할 때 필요한 양을 다져두었다. 남은 것은 남편 몫이다.
튼튼한 팔 쓸모가 있어서 다행이다. 남자, 여자.. 결코 등가로 평등할 수 없다. 힘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난 그 차이를 인정하고 힘쓰는 일은 힘이 남는 내 남자에게 양보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