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나는 그 속도에 발맞추기가 버겁다. 그냥 하던 대로 익숙한 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 키오스크도 최근에야 익숙해졌고, 외식도 잘하지 않아서 (TV에서나 보던)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하는 새로운 경험도 내겐 짜릿하기만 한 촌스런 아줌마다. 배달앱도 깔지 않고 방문 포장을 선호하며 방문 포장 시 할인받는 2000원이 귀한 아줌마이다.
유일하게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것은 아이들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 뿐. 예를 들면 학교 공지 사항 전달을 위한 앱(학교종이)을 깐다든가, 그를 통해 전달되는 사항을 확인한다든가, 그로 전달되는 설문에 응한다든가... 뭐 이 정도에는 빨리 적응하려고 한다. 이마저도 처음에 어찌나 신기하던지... 학부모 상담 신청도 바로바로 되고, 체험 학습 횟수도 설문.. 임시공휴일 설정도 설문.. 간단하고 빨라서 선생님들께서도 종이 알림장보다 편해진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터넷 뱅킹에서 폰뱅킹으로 넘어온 지도 겨우 1년 남짓밖에 안 되었다. (확실히 그 편리함에 완전 매료되었다!) 편리함에 매몰되기 싫다는 고집에서도 아니고 단지 운동을 워낙 싫어하던 탓에 한 번이라도 더 "움직일 이유"를 찾아 은행을 일부러 방문해서 일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였다. 딱히 큰 변화가 없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큰 불편함을 못 느끼고 살았다.
그러다 일부러 운동을 시간 내서 해야 하는 몸상태(혈당수치 요동)가 되어서야 주거래 은행 앱을 깔고 폰뱅킹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운동과 폰뱅킹이 무슨 상관관계냐겠지만 내겐 '주어진 시간의 활용'에 관한 문제였다. 운동 시간을 따로 내야 하다 보니 은행을 방문하는 일이 번거로워진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어떤 계기가 있어야 나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변화 없는 익숙함이 내게 편안함을 준다.익숙함에서 웬만하면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줌마. 그 편안함을 이길 정도의 불편함이 피부에 와닿아야 변하는 원시인 아줌마다. '시대의 흐름'이니 단순 '편리함' 따위의 이유로 날 유혹할 수는 없다.
나의 이런 생활 태도는 언니네 가족의 내기 게임 대상이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뜬금없이 전화해 언니가 묻는다.
"윤정아, 니들 집에 혹시 햇반 있나?"
"당연히 없지~~ 근데.. 그건 왜?"
"아니.. 우리 집에서 애들이랑 형부랑 내기했거든. 니들집에 햇반이 있나~ 없나~"
푸하하~~~
누가 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일상이 주변인들에게 어찌 인식되고 있고 나의 생활이 요즘 보통(?)의 생활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되었다.
어느 날 옆에 남자와 주말 드라마를 보는데 둘이서 맞장구친 요상한(?) 장면이 있었다. 물론 우리 둘의 눈에만 이상하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 속 자연스레 등장한 것을 보니 이미 보편화된 생활 문화일 지도 모른다. 무슨 장면이었냐면... 집에서 아침을 먹는 장면인데 햇반이 등장한 것이다!밥솥에서 밥을 떠서 식탁에 놓는 것이 아니었다! 집에서 말이다! 우리 집에선 있을 수 없는 낯선 장면이었다.
"집에서도 햇반을 먹네~!!!"
원시인 부부는 서로 바라보며 이게 요즘 트렌드인가 보다..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우리 집에도 햇반이 구비되어 있다. 초등생 큰아이의 요리 실습 준비물로 샀던 것이 남아서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글쎄 전날 쌀을 깜빡 담가두지 않고 잠든 데다가늦잠까지 자버린 어느 날 아침 요긴하게 써먹은 이후 그 편리함과 제품의 퀄리티에 반해서 급할 때 비상용으로 구비해 두고 있다.(이건 필수품이야!ㅎ)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얼마 전엔 뉴스에서 본 바로, 떡볶이도 냉동 제품으로 수출한다니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지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지만 선택하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도 나는 조금은 천천히 가고 싶다.그런다고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 나만의 속도 나만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