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일이다. 엄만 내인생 절반의 시간을 병상에 누워 계셨다 가셨으니 엄마가 멀쩡했던 시절의 기억이란 아주 오래전이란 뜻이 된다.
난 대학 1학년 막 입학해서 대학생활의 신선함에 아주 그냥 신이 났던 거 같다. 근처 큰 도시인 대전으로 기차를 타고 통학하게 되었고, 평일은 물론이고주말에도 집에 있었던 날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그런 교통 편의 제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엔 "pass"라고 하여 한 달 기차 통행권을 끊어서 학교를 다녔었는데, 한 달 치 패스를 끊으면 하루에 몇 번을 이용하든 상관없는 그런 정액제가 있었다.그러니 대전을 옆집 드나들듯이 다녔다.
아침 강의 시간에 맞춰 눈 뜨자마자 후다닥 준비하고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어나오면 엄만오토바이를준비시켜 두고 날 기다렸다가 태워서 바람같이 기차역으로 내달리셨다. 기차는 조금이라도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가끔 연착되는 일이 있었지만그걸 예측하고 늑장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날 기차역에 태워다 주곤 하루종일 기다린 것이겠다 싶다.)
그렇게 일찍부터 서둘러 집을 나간 후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3월엔 개강파티니 여기저기 모임이니 행사도 많았고 새로이 사귀는 친구들과 가까워지는 시간도 필요했다. 신학기 개강하자마자부터 거의 매주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다녔으니 엄마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할 틈이 거의 없었다. 그게 화근이 되었다.
어느 날 5월 대학 축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울로 대학을 간 친구가 다른 대학 축제에 같이 가자며 주말에 날 또 불러냈다. 난 그 친구와 한동안 못 만났으니 궁금하여 약속을 잡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통화내용을 듣자마자 엄마가 "또 나가?"냐며 화를 버럭 내시는 것이었다.
이건 중대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는 내게 거의 화를 낸 적이 없었기에 나로선 무지 당황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난 전화선 너머 친구에게 못 나가겠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당시엔 핸드폰 시대가 아니었기에 전화는 가족이 모두 사용하는 공용 물건이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야기였다.)
문제는 친구와의 약속이 어긋난 사실이 아니었다. 엄마가 내게 화를 내셨다는 사실이다!
이럴 수가!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도 화를 낼 수 있구나...
그것도 내게!
그 당시 난 엄마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화가 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게도 아이가 생기게 되니 알 거 같았다.
엄마에게도 딸과 보내는 소소한 일상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소중한 시간을 내어달라고 내게 몸부림을 쳤단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그날 난 가슴이 너무 아팠다. 엄만 뇌졸중으로 쓰러지셔 계속 누워 계시는 생활을 하고 계셨던 때였다. 그땐 엄마가 내 손을 빌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실 수 없던 때였다.
요 녀석이 6학년이 되면서부터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말은 의례히 약속이 있겠거니..한다. 이제는 내가 내 아이를 매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 녀석은 모를 것이다. 엄마에게도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내가 몰랐던 것처럼 녀석도 모를 것이다. 친구들과 보내는 즐거운 시간에 묻혀 엄만 인식조차도 하지 못하는 존재일테지..엄마는 늘 그 자리에 요지부동으로 기다려주리라 생각하겠지. "엄마, 카드에 돈 얼마 남았어?"라는 질문에 답이 알고싶을 때에만 엄마를 인식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