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를 두는 기준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나요.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아니면 가보고 싶은 나라, 좋아하는 향기, 꽃, 책...
나이가 드니 특별한 그 무엇을 만나도 가슴이 예전처럼 뛰지 않더라구요. 물론 예전엔 이러지 않았죠. 샤프 펜 하나를 고르더라도 이리보고 저리 보고, 색깔, 디자인, 작은 캐릭터 그림 하나까지 살펴보고, 그것도 모자라 손에도 쥐어 보고 느낌은 어떤지 사소함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신중했던 저였습니다. 어제 훅 치고 들어온 옆에 남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 잃어버린 세계를 만났어요. 이 남자는 제게 이런 자극을 던져주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저녁 시간에 남편과 나란히 마트에 가게 되면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묻곤 합니다. 얼마 전 큰 아이가 특정 아이스크림을 콕 짚어 지정하면서 마트에 가서 있으면 사다 달라고 하더군요.
제 반응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걸 꼭 정해서 말하는 건 또 뭐야~'
까다로운 녀석 비위 맞추기 힘들다며 잠깐 투덜거리고 흘렸습니다. 원래 가려던 마트에서 살펴보니 그 제품이 없기에 집에 돌아오기 전 집 앞 편의점을 한번 더 살펴보았지만 없었어요. '이 정도 노력이면 충분하다'는 맘속 위안인지 변명인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단순 '통보'를 하였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안심이었어요. 요 녀석 어릴 땐 원하는 걸 얻지 못했을 때 실망감이 컸었거든요. 자라는 만큼 받아들이는 것이 늘어나니 제 마음의 부담이 주는 부분이 좋긴 하더라구요. 그냥 가볍게 흘려보냈습니다. 하지만 옆에 남자는 달랐어요.
며칠 뒤 남편은 또 다른 마트에 갔다가 큰 아이가 그토록 원했던 특정 아이스크림을 발견하고는 사 왔습니다. 기억해두었다가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일부러 살펴보았다는 것이겠죠. 무슨 노다지라도 발견한 듯 뿌듯해하면서 건넸어요. 당사자 아이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저녁 수업이 취소되어 오랜만에 오늘 또 저녁 시간이 남편과 맞았습니다.
"엄마랑 아빠, 마트 갈 건데 원하는 거 있어?"
"아니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재차 묻는거예요.
"지난번 그 아이스크림 사다 줄까?"
"아니요~"
난 특별히 비싼 그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여 왜 일부러 물어보는지 눈치를 줬습니다. 그 아이스크림을 샀던 마트를 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랬더니 이 남자가 말하네요.
"좋아하잖아.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즐거울 수 있다는 게 좋잖아! 나이가 드니까.. 뭐.. 특별히 좋고 즐거운 것이 없어지더라고. 좋아하고 즐거운 것이 있다니까 얼마나 좋아~"
돈 몇 푼..
그러게요. 제가 생각한 것은 단지 돈 몇 푼이었네요.
그로 인한 행복감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랜만에 이 남자가 저의 생각을 일깨워주었어요. 생각을 이끌어주고 깨어있게 만들어주던 사람. 제가 좋아하는 이 남자의 모습을 잊고 있었네요. 매일 먹을 거만 바라보는 남자라 생각한 지 오래였어요. 오랜만에 신선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래, 좋아하는 것은 즐겨야지.
시간 지나면 모든 게 다 흐려지는 거야.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것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