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우연.
그래 우연이었다.
요 녀석을 접하게 된 것은.
하지만 그 매력적인 단단함에
너무도 쉽게 날 허용하고 말았다.
망한 걸까.
아니 아니
소. 확. 행.이라고 해 두자~
한동안 당뇨 예비 환자 행세하며 부단히도 노력했다. 옆에 남자는 위험한 수치도 아닌데 과도하게 의식한다며 핀잔을 주기도 했었지만 생활이 우등생 기준에 맞춰진 나는 혈당이 안정권으로 접어들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었다. 커트라인에 간드랑거리는 것은 내 인생에 허용할 수 없었다.
하루 세 번 밥숟가락 놓자마자 운동을 다녀왔고, 하이얀 고운 쌀밥은 언제 먹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밥공기에 반도 채우지 않고 밥을 먹었다. 최근에는 밥 대신 감자샐러드와 닭죽, 단호박으로 나의 뇌와 몸상태를 단련시켰다. 과도한 요구는 말아달라고.. 내가 공급할 수 있는 탄수화물은 여기까지라고 열심히 세뇌시켰다. 쌀을 대신할 수 있는 포만감은 단련되기 힘들었지만 의외로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결과치였다. 마침내 포만감이란 감각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에 이르렀다. 식사량이 줄고 그 선을 유지하다 보니 위도 적응한 모양이다. 적은 식사량으로도 어느 정도 편안한 상태까지 오게 되었다.
그랬더니 슬슬 반응이 긍정으로 되돌아왔다. 매일 체크하는 숫자 세 자리가 가끔 두 자리가 되기도 하고 어쩌다 못 참고 먹은 떡볶이에도 스파이크를 보이지 않고 정상 수준에서 머물렀다.
이쯤 되면 조금 나태해지는 것도 정신 건강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조금은 더 행복해져도 되지 않을까. 운동 횟수는 하루 1번으로 줄었고 식사 사이에 간식도 먹게 되었다. 특별한 날에는 케이크도 먹고 떡볶이도 먹었다.
얼마 전엔 마트에서 할인하는 과자에 침 흘리다가 집어왔는데 바로 '조청 유과'였다. 허기가 느껴질 때마다 두세 개씩 집어 먹었다. 더 이상은 허용해서는 안된다. 안심하고 방심하는 순간 언제든 위기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 관리하고 조심해야 하는 몸상태가 되었지만 건강한 식단에 관심을 갖고 관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근데 화근은 저 과자에서 출발했다. 한 봉지가 두 봉지가 되고 두 봉지는 세 봉지를 부르고 있었고 한 번에 먹는 과자 개수도 많아지고 회수도 잦아졌다. 안 되겠다 싶다. 달콤한 그 물엿에 내 영혼을 맡길 수는 없었다.
잘 참아오다가 왜 과자에 꽂히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니 원인은 '죽'이 아닐까 싶다. 닭죽을 끓여두고 아침에 자주 먹곤 했는데 씹는 욕구가 해소가 안 되다 보니 무언가를 자꾸 씹고 싶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우연히 옆에 남자가 막걸리 안주로 집어먹는 과자가 보였다. 엊그제였다.
내 눈엔 달팽이 모양인데 어딜 봐서 고구마 모양 같다고 생각했을까. 한두 개만 먹으려 했는데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쩜 이리도 딱 내 취향일까! [청우 식품] 감사합니다! 주식이라도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극적이지도 않은 적당한 단맛에 몇 개 더 먹어도 왠지 혈당이 많이 안 오를 것 같은 느낌! 아주 적당한 정도로 씹힐 때 느껴지는 단단함이 나의 씹는 욕구를 해소시켜 주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가끔 씹히는 참깨의 고소함은 또 어찌하란 말인가. 한 가지 단점을 찾으라 하면 참지 못하고 계속 입에 주입한다는 것이다. '이래선 안돼.. 이래선 안 되지..' 하면서 어느새 욕구가 사그라질 때까지 먹은 어제~!! 망했다. 녀석의 포로가 되어버렸다. 남편에게 말해서 마트 갈 때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내 입으로 과자를 부탁하다니! 그나저나 씹는 욕구가 이토록 근본적인 행복감을 안겨주는지 몰랐다.
나는 오늘 새 봉지를 뜯어서 일부를 그릇에 비우고 집게로 입구를 막았다. 나의 욕구를 진정시켜 주길 바라며... 요정도 허용해도 괜찮은 나의 혈액 상태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동안 여러 가지 참느라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