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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출

by 날마다 하루살이

나이가 드니 어릴 적의 외출과는 다른 외출을 하게 되었다. 어리고 풋풋하던 그때는 세수하고 화장하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었다. 날마다 일정이 있었고, 어쩌다 집에 있게 되는 그런 시절이었다.이제는 어쩌다 외출이 잡힌다. 주로 가족행사. 이를테면 시부모님 생신이나 명절, 제사.. 아니면 결혼식.. 어느 때부터인가 장례식이 추가되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 나이 든 이 아줌마는 직장 다니는 일정도 없으니 바깥구경이라곤 도통 할 기회가 없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기회는 더 없어졌다. 간간이 있는 외출의 시간도 동행하는 남자가 있으니 운전석 옆에 조용히 앉으면 알아서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운전을 할 줄 모른다.


그런 내가 벌써 3번째 특별한 외출을 하게 되었다.

바로 어머님의 은행 업무를 같이 봐드리기! 얼마 전 치매 판정을 받으신 어머님은 혼자서 처리하시는 일에 한계가 생겼다. 첫 번째 외출에선 만기 된 통장을 재예치하는 임무였고, 두 번째 외출에선 1차 소비쿠폰을 받기 위함이었고, 이번 세 번째 외출에서는 2차 소비쿠폰을 받기 위함이었다.


아이들 등교 전에 미리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유성까지 갔다 오는 길은 길거리에 많은 시간을 흘려야 하는 여정이다. 게다가 정해진 오후 일정을 생각하면 돌아올 때까지 맘이 편치 않는 바쁜 일정이다. 급한 맘에 서둘러 나왔는데 기차 출발 시간이 미뤄졌다! 그것도 20분씩이나! 아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했다. 어차피 내가 서두른다고 바뀔 상황이 아니니 오랜만에 자판기 커피나 즐겨볼까.. 하며 늘 기차역에 오면 마시던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꽤나 오랜 시간이 남았으니 부산하게 털고 나오던 마음 좀 가라앉히고 여유를 마셔보자... 했는데!

내가 원하던 그 밀크커피, 블랙커피, 설탕커피 3종 선택지를 선보이던 익숙한 자판기가 아니었다! 우이씨~


어쩔 수 없이 미리 승강장으로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앗~ 자판기도 보인다. 설마 승강장엔 있겠지..

여기에도 없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도록 난 집안에만 있었구나. 하긴 역 주변에만 해도 커피 전문점이 몇 군데나 있는데 나처럼 어느 촌스런 사람이 있어서 자판기 커피를 찾을까.


세상이 이렇게 변하도록 난 집안에만 박혀 있었구나. 갑자기 쓸쓸해졌다. 나만 혹시 정지되어 있나? 변화에 신경 쓰지 않고 나에게만 집중했던 시간.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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