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별을 통보받았다. 나는 늘 통보를 받는다. 내가 먼저 이별을 고한 적은 거의 없다.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나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다. 내가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다. 시작이 언제였든 고3이 되면 자연스레 헤어진다. 하지만 그 헤어짐의 이유가 지금과 같은 이유가 되지 않길 언제나 바라고 또 바란다.
몇 개월같이 공부하던 아이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 아빠가 아시는 분에게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고. 아... 올 것이 또 오고야 말았구나. 아이 공부에 지대한 관심(?간섭?)을 가지는 부모의 아이들을 만나면 언제나 미리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뉘앙스의 대화가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기 때문에 시기에 따를 뿐이지 언제든 내게 닥칠 일이라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충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 일이 반복된다고 해서 예방주사 맞듯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나의 무능함으로 평가받는 느낌이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은 이유이다. 난 단지 거칠고 강하게 아이를 압박하지 않을 뿐인데...
중학교 입학하여 본시험에서 처참한 결과를 얻었으니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부가 어려운 아이들은 믿고 기다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의 기대치를 낮춰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한 아이의 성향을 부모는 잘 알고 있어야 갈등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나름대로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할 때 괴롭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불안한 마음 잘 진정시켜 차근차근 한 발씩 안내해주고 싶었다. 이제 속도를 내어보고자 하려는데 이별이란다. 좀 더 다그치며 이끌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또 지웠다. 다그친다고 주사기로 약물 투여하듯이 지식을 넣어줄 수는 없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깨고 한 단계씩 올라서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도 초기에 가졌던 수학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어느 정도 극복했으리라 믿고 싶다. 자신감을 어느 정도 장착했으니 이제는 그 바탕 위에 노력의 불씨를 지피고 동력을 스스로 내야 할 것이다. 그 아이가 해낼 수 있을까.. 잘 해내길 바란다. 헤어짐이 아쉽지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믿어보자.
헤어짐을 통보받은 날은 좀 기분이 가라앉는다. 일부러 아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어 내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아쉽다. 내가 선택하고 믿고 있는 방법이 왜 이 아이에겐 통하지 않았을까. 내 잘못이 아님을 알지만 오늘 잠시 기분이 가라앉는 것까지 막을 길은 없었다.
오후에 수업 한 시간을 하고 나니 내 속의 에너지가 다시 살아났다. 그래, 난 이 일을 너무 좋아해! 수업을 마치고 크림 파스타를 해서 같이 저녁을 먹이고 공부를 좀 더 해서 학생을 보냈다. 하려는 의지가 있는 아이는 신이 나서 만나게 된다. 다시 신명이 올라와서 다행이다. 이별을 통보받은 후 첫 수업이 이 아이여서 참 다행이었다. 내가 역시 운수 좋은 여자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