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게
선생님은 한동안 지쳐있었어. 선생님의 노력에 상관없는 결과물을 받아왔기 때문이야. 선생님이 아무리 애를 써봐도 받아주는 이가 그걸 흡수해주지 못하면 나의 노력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 그게 교습자의 숙명이야. 그 경험을 하고 너무 지쳐있을 때 너를 만났다.
넌 이제 중학교 3학년. 곧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요한 시간이지. 너희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2학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3학년 때부터 성적이 떨어졌다는 거야. 학원에 다녔었지만 한번 놓친 내용을 다시 따라잡기 힘들더라고 했다는구나.
내가 너를 첫 시간에 만났을 때 나의 감정은 아쉬움이었어. '조금만 일찍 만났더라면...' 넌 수업에 집중도 잘하고 배우려는 의지 또한 강했어. 한 번 읽은 내용을 잘 기억했고 확실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정확하게 질문할 줄도 알았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과 공부가 어려운 아이들은 질문하는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어. 넌 내가 그동안 듣고 싶었던 질문을 던져주는 모습을 보여줬어. 난 신이나서 답해주었지. 첫 수업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어.
너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금 일깨워주기도 했어. 계산 도중 1학년때 이미 배웠던 내용인데 잘 모르는 것이 있어서 의아해했더니, 학원 선생님한테 물었었는데 시간이 없다며 가르쳐주지 않고 넘어갔다는 거야. 그 뒤로 배울 수가 없었대. 휴우~ 몇 초 걸리지도 않는 간단한 내용이었는데... 그러니 내가 1:1 수업만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거지. 진도를 나가다가 그 이전에 놓쳤던 내용이 파악되면 바로바로 메우면서 진행할 수 있어서 난 1:1이 좋아. (물론 경제적인 면으로 보면 훨씬 비효율적이지만 말야.)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느낌이란 건 정말 기쁜 일이거든. 내가 내딛는 걸음을 한 발씩 따라와 주며 너가 고개를 끄덕일 땐, 게다가 "아~~!"라는 추임새까지 섞어주면 기분이 날아갈 듯하단다.
오랜만에 만난 이 설렘. 내게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준 네게 너무 고맙구나. 엄마 말로는 네가 4차원이라며 선생님을 힘들게 하더라도 양해를 바란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보내주었지만, 내가 바라본 너는 자기 의사가 분명하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명확한 아주 괜찮은 학생이야. 2시간 수업을 진행해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와 집중력을 엄마는 모르겠지. 난 그 모습에 또 에너지를 얻고 힘을 내게 된단다. 너에게 고마운 이유야.
우리 이제 겨우 시작이야. 앞으로 너와 함께할 많은 시간들이 기대가 돼. 네게도 내가 좋은 이미지로 인식되었을지 궁금하구나. 주말엔 바쁘니 월요일에 잠깐 엄마를 만나러 미용실에 다녀와야겠다. 엄마의 선한 모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너가 벌써 좋아지려 해.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
늦은 시간에 와서도 자세 바르게 집중하는 너가 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