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그러니까 네가 중학교를 갓 입학하고 중간고사를 치른 후니까 5월쯤 처음 너를 만났나 보다. 앞서 다니던 학원에서 1:1 과외를 권해주셨다는 엄마의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수학이 어려운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그런데 막상 너를 직접 만나 보니 생각보다 잘하는 거야. 게다가 수업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서 오는 네게 신뢰가 쌓이고 있었어. 좀 산만한 면이 없진 않았지만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그뿐이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세 번째 수업이었던가.. 수업시간에 앞서 톡이 하나 날아왔어. 난 네가 오늘 수업에 올 수 없음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줄 알고 얼른 열어봤지. 수업에 공백이 생기면 내겐 잠시 쉴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생기는 거라서 긴장을 잠시 풀 수가 있거든. 그런데 보내온 톡의 내용은 예상을 빗나갔어.
선생님 저 숙제 다 못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죄송해요..ㅠ
이런 내용의 톡을 받은 것이 첨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어. 귀엽단 생각이 들었지. 괜찮아, 괜찮아. 그동안 잘해왔으니 한 번쯤은 못 할 수도 있지. 매번 못 해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넌 잘 해왔잖아. 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우리 집을 맘 편히 드나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랐어.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할 테니 서로를 알아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으면 했기 때문이야.
저녁 먹고 8시 공부 시간. 너는 졸음을 참으려 잠깐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거나 민트향의 과자를 가지고 와서 입에 넣거나, 찬물 한 컵 달라고 하면서 최대한 졸음을 물리치고 수업에 참여해 보려는 의지를 보여줬어. 난 그 모습도 기특해 보였지.
그런데 말이야. 중요한 기말고사를 어느 정도 앞둔 시간부터 너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어.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매번 이야기했고, 집중을 잘 못하는 시간이 잦아졌지. 시험 스트레스가 심하구나.. 싶었어. 스트레스는 하기 싫은 마음과 맞물려 너의 태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 수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 혼내고 다그치는 방법을 쓰지 않는 내게 어쩌면 좀 풀어진 모습을 보여도 될 것 같은 틈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좀 흐트러져도 그냥 기다렸어. 그러다가 어느날 이야기했지.
"○○야, 오늘처럼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은 날에는 선생님한테 톡해도 좋아~ 그런 날은 쉬고 다음 시간에 공부하기로 하자."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네 마음이 동할 때 제자리를 찾으면 내가 그 곁에 있어주겠노라.. 하는 마음이었어.
엄마에게도 동의를 구하는 톡을 보냈지.
요즘은 예전과 달리 교권이 많이 추락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듣고 있음과 마찬가지로 개인 교습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학부모의 의견을 충분히 확인하면서 수업을 진행해야 문제가 없다. 운영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뒤로 너는 몇 차례 공부 시간을 미루게 되었고, 난 네 뜻을 일단 들어주기로 했어. 너는 너의 마음도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경험할 자격이 있어. 어쩌면 너의 의지가 아닌 다른 계기로 시작된 '학원'생활에서 네게도 최소한의 선택권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었어. 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면 네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기다렸어.
어쩔 수 없이 엄마 손에 이끌려왔지만 네 의지가 반영된 공부를 해주기를... 같은 학교 동급생 친구인 우리 집 큰 아이와의 일상도 가끔 공유해 주면서 너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렸어. 열릴 것 같지 않던 너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려나 봐. 내가 권하는 것에 콧방귀 뀔 것 같던 네가 관심을 보였어.
"○○야, 선생님이 ○○ 생각하면서 책을 샀는데 하루에 하나씩 읽고 맨 마지막 부분을 필사해서 선생님한테 톡으로 보내주는 거야. 선생님이 ♤♤이(우리 집 큰 아이)랑 3월에 엄청 싸웠다고 했잖아. 그때 누군가 말해줘서 우연히 필사를 해보았는데 마음이 진정되더라고. ○○도 한 번 해볼래?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선택은 네 몫이야~"
하고 싶지 않다고 할 줄 알았어.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지. 해보겠다는 거야. 조심스레 두드린 너의 마음이 열린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
그날 넌 첫 번째 톡을 보내왔어. 선생님 기분이 너무 좋았단다. 우리 앞으로 잘해보자. 네가 너의 자유의지로 공부하게 되는 날을 기다릴게. 그렇게 되면 너는 네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