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방 하나에 책상 하나. 내가 일하는 곳이다.
대학 1학년 때 친구 엄마의 추천으로 과외 학생을 소개받았다. 그 뒤로 이어진 아르바이트가 졸업 후 내 일이 되었다.
뇌졸중으로 누워 계신 엄마 침대 옆에 커다란 상을 하나 펴 두고 아이들과 수학을 공부했다. 때로는 엄마의 대소변을 아이들을 잠시 방에서 내보내고 봐드려야 하는 날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불평 없이 받아주는 모습이 너무 고맙던 날들이었다.
결혼 후엔 내가 꾸민 공간에 책상을 놓고 아이들을 만났다. 상이 아닌.. 책상에서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고, 엄마를 다른 방에 모실 수 있어서 좋았다. 책상이라고 지칭하지만 면밀히 말하면 식탁이다. 신혼 때 시댁에서 중국집을 운영하였는데, 남는 식탁을 우리 집으로 아버님께서 실어다 주셨다. 손수 실고 오셔서 새로 조립하신 날이 생각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새댁은 아버님께서 잔치국수를 좋아하신다는 정보를 입수하곤 점심으로 국수를 삶았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소중한 순간이다.
그렇게 시작된 공간에서 만난 아이들은 꽤나 여럿이다. 아이들은 나를 잘 따라주었다. 1:1만을 고집하는 수업 방식은 함께하는 시간만큼 깊은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졸업 후에도 찾아오는 아이들, 헤어질 땐 눈물을 보이며 수줍게 편지를 건네는 아이들, 스승의 날 선물을 보내오는 아이들,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들고 오는 아이들... 내 젊음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아갔던 아이들은 내게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다.
내게 있는 열정과 아이들을 향한 마음은 변함이 없는데, 요즘 세상이 많이 변한 만큼 아이들도 변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정확한 진단은 할 수 없지만 예전에는 공부하려는 의지가 본인에게서 나왔다면 요즘은 엄마 손에 이끌려 오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란 것이다. 엄마 침대 옆에서 상 펴고 공부할 때만 하더라도 친구들끼리 소개해서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이 많았다. 친구가 친구를 데려오고 그 친구가 동생을 데려오고... 하지만 요즘은 엄마의 정보력에 의해 오게 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학원의 연결고리를 엄마가 취사선택하여 결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이라... 그게 원인이 되었을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려의 의지보다 마지못해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런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은 더 힘들어졌다. 수업은 수업대로 해야 하고 마음 챙김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생겼다.
"○○야, 오늘 또 공부하기 싫은 표정이네~"
"어제 늦게 잤더니 피곤해요."
늦게 잔 피로감이 오후 시간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이다. 억지로 엄마 성화에 못 이겨 오게 된 것이다.
"그럼, 선생님이 ○○이랑 같이 보려고 캡처해 둔 글이 있는데 같이 읽어 볼까?"
어떤 날에는..
"○○야, 혹시 지뢰 찾기 게임 알아?"
"보긴 했는데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선생님이 알려줄 테니까 한번 해볼까?"
지뢰 찾기 게임은 '논리적인 생각'을 필요로 하고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거 같아서 권해보는 게임이다. 잠시 지루한 공부 시간 중에 관심을 돌리며 쉬어갈 수 있을 거 같아 아이들에게 권하게 되었다.
별 관심 없이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다음 시간에 소감을 전해주었다.
"선생님 그 게임 은근히 재밌던데요?"
"그래? ○○가 좋아할 줄 알았어~!"
"○○야, 공부가 왜 하기 싫지?"
"그냥 하기 싫어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학원 다녔어요.
공부가 귀찮아요."
"○○는 계산도 빠르고 수학을 어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조금만 해보자~! 지금 요단원은 조금 지루할 수 있어. 요기 끝나면 ○○가 재밌어할 것 같은 단원 또 나오니까 조금만 참고 해 보자~"
매시간 아이들을 달래면서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수업 내용 외에 고민할 것들이 많아졌다.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까...
아이들 마음을 돌리기 위해 책을 주문해 봤다. 필사 노트까지 겸비된 책이었다. 얼마 전 큰 아이와의 관계로 힘들었을 때 잠깐의 필사가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이 기억났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믿지 않았을 일이다.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