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는 처음으로 숙제를 완료해 왔어. 매번 어렵다는 이유로 몇 문제를 풀지 못한 채로 그냥 왔었는데, 그 문제들이 숙제 범위로 치자면 맨 뒷부분이니, 누가 봐도 끝까지 풀지 않고 그냥 모르겠어요를 이유로 붙여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그냥 왔음을 알 수 있는 상황이야.
하지만 나는 혼내거나 다그치지 않았지. 너의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이야. 한 문제 푸는데 어느 정도 속도를 보여주는지. 그러니 그 정도 푼 것만도 잘했다고 다독여줬어.
너는 유난히 계산이 느려서 많이 기다려줘야 했어. 너에게서 과연 발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매번 의구심을 갖고 너를 만났지. 그런데 말야. 너에게서는 꾀를 부리거나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여타의 아이들에게는 느끼지 못하는 진실성이 있었어. 내 마음을 자꾸 붙잡았지. 그 진실성을 바탕으로 너는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어. 네가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기뻤어! 그런데 있잖아. 네가 발전할수록 내가 너에게 "좀 더"를 요구하게 되는 거야. 좋은 결과로 너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거든.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겠니. 그 절정의 노력을 보여줘야 할 때 평소와 다른 너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 당시 엄마와 통화할 때 걱정 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즘 밤늦게까지 친구랑 어울리다가 들어온다고... 뒤늦게 사춘기가 온 모양이라고... 늘 칭찬만 하시던 너희 엄마께서 근심 가득한 목소리를 내게 들려주셨다.
숙제는 미완이 대부분이고 좀 더 힘을 내주길 바라는 마음만으로 널 움직이게 할 수는 없었어. 기말고사가 임박해서야 다시 정신 차려보았지만 너에게 충분한 훈련으로 익히는 시간은 부족했지. 시험을 앞둔 1주일. 너의 빛나는 노력을 난 기억 한다. 그럼에도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기엔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출제하신 선생님이 그리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조금만 난이도를 조정해 주셨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너의 성과를 나는 알고 있지. 예전에는 풀 수 있는 문제가 거의 없었다면 이제는 문제를 보고 도망치지 않고 익숙한 느낌을 찾아 풀어낼 수 있다는 거야. 너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거야. 우리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알았지? 네 성적으로 인문계에 혹시 진학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너는 분명 알게 되었을 거야. 할 수 있다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를. 그리고 그 차이는 어려움 앞에 네가 도망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 내적 힘으로 자리 잡을 것임을 난 알고 있어.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보자. 네가 웃는 모습을 너무 보고 싶구나. 우리 서로를 위해 힘을 내어 보자. 언제나 널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