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이 몇 방울 남지 않았다. 떨어지기 전에 근처 기름집을 다녀왔다. 물론 여느 때처럼 소주병을 한 봉지 가득 담아 기름집 할머니께 전해드리려 낑낑 거리며 들고 갔다. 우리 집에선 쓸모없지만 할머니껜 유용하게 쓰이니 기꺼이 모아서 드리게 되었다. 평소에 손님이 뜸한 방앗간에 먼저 오신 손님이 보인다. 고춧가루를 빻으러 오신 모양인데 뭐가 못마땅하신지 잔뜩 심술이 나 있다.
"아니, 왜.. 고추를 50근이나 가져왔는데 고춧가루가 38근밖에 안 나와요~! 저울이 이상한 거 아니에요? 아니면 저기 기계에 끼인 것 아니에요? 고추씨도 얼마 안 나왔는데.. 고춧가루가 왜 이렇게 조금밖에 안 나와요~~~~~!"
그것만이 불만이 아니었다.
"아니, 다른 집에 가면 주인이 다 알아서 빻아주는데 여기서는 내가 다 했잖아요~! 이거 고무장갑도 내가 가져온 거고! 다른 집에서는 가만~~ 히 서 있다가 받아가면 되는데 여기서는 내가 더 일을 많이 한다니까!"
옆에서 듣고 있자니 좀 불편했다. 할머니가 고춧가루 담을 커다란 봉지를 가지러 어디론가 들어가시니, 집도 지저분하다고 나에게 그것까지 불평을 늘어놓으신다.
'그렇게 맘에 안 드시면 다른 방앗간 찾아가시면 될 일이잖아요'
속으로 부글거렸지만 할머님의 생계가 달린 일에 내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께는 조금 까탈스럽지만 그래도 찾아와 주는 고객일 터이다.
할머니가 안 계신 틈을 타 내게도 관심을 보이셨다.
"소주병 가져온 거 같던데, 뭐 사러 왔어요?"
"아, 네.. 참기름 사려구요. 소주병은 할머니 가져다 드리면 좋아하시더라구요"
"여기서는 잘 쓰지~~"
할머니께서 찾아오신 봉지에 고춧가루를 담고 다시 저울에 올려 보고, 기계에 남은 것이 더 있는지 한 번 더 기계를 돌려보았다. 기계안도 발뒤꿈치를 들고 들여다 보고서야 수긍을 했다.
"얼마예요!"
"38근이니까 3만 8천 원~"
"고춧가루 빻는데 한 근에 천 원이나 받아요?
3만 5천 원만 해요!"
대꾸도 없이 할머니는 건네는 (3천 원이 모자란) 돈을 받으셨고 5만 원짜리를 건네시곤 거스름 돈으로 잠깐 또 실랑이를 하고 그 손님은 가게를 나가셨다. 할머니의 계산이 좀 맘에 안 든다는 한마디 "그것도 계산 못해요!"까지 날려주셨다. 할머니는 그래도 고객 응대를 끝까지 마치셨다.
"도토리 묵 쑤면 조금 줘~"
"도토리 빻으러 와서 주는 사람도 없어요?
알았어요! 오늘은 안되고 내일 갖다 줄게요!"
이상한 대화였다. 나 같으면 갖다 줘도 먹기 싫을 거 같은데 이쪽에서 먼저 달라고 하다니... 그간 어떻게 관계가 이어져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참기름 달랬지? 정신을 쏙 빼놓고 가네~! 으이그~"
"할머니, 저, 현금이 만 2천 원 밖에 없어요. 만 2천 원어치만 주세요~"
"만원만 줘~"
내손에서 만 원짜리 한 장만 빼어 가시곤 기름 한 병을 내게 건네주신다.
"감사합니다~~~"
2천 원을 마저 드리려 해도 한사코 받지 않으신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안다.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잠깐 기다리라 신다. 분명히 뭘 또 주실 것이 분명하다. 걸음을 재촉하여 나오는데 거절하지 못하게 날 뒤따라오신다. 어쩔 수 없이 또 요구르트를 감사히 받아왔다. 매번 소주병과 요구르트를 바꿔 먹는다.
손님은 가만히 서있어도 주인이 다 해준다는 방앗간 기름집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할머니께서 존재하심으로도 난 감사하다. 오히려 할머니 건강이 허락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감사함을 배운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