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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으로 인한 혼란

by 날마다 하루살이

오늘은 제발... 이란 간절함을 담아 매일 아침 폰을 든다. 아침마다 치매 진행을 늦춰준다는 약을 드실 수 있게 어머님께 전화를 드린다. 어머님의 목소리는 날마다 다르다. 하루는 반기시다 다음날은 힘이 없으시다가 또 다른 날엔 역정을 내신다. 어떤 목소리가 날 기다릴지 모르기에 조마조마하다. 불편한 목소리가 나올까 봐 매번 말을 조심스레 건넨다.


"어머님.. 윤정이에요~"


그냥 평소처럼 '어머님, 오늘이 ○월 ○일이에요. 달력 보세요~'라고 얘기할까 하다가 다른 방식을 택해봤다. 어머님께 틈을 드리면 안 되었는데 그만 놓치고 만 것이다.


"야, 윤정아. 네가 내 통장 가방 얻다 뒀냐?"


아.. 오늘은 또 걸려들었구나. 어머님께서는 치매를 앓게 되신 후, 어떤 이유에선지 바로 아랫 동서가 자꾸 본인의 재산을 탐내어 몰래 와서 돈을 가져간다는 생각에 빠지셨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어머님께 지극 정성으로 보필했던 동서였는데.


어머님 생신이나 명절 때마다 화장품에 녹용에 떨어질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챙겨 드린 건 동서였다. 게다가 우리 삼 형제 중 가장 경제적으로 넉넉한 동서가 왜 그런 의심을 받게 된 걸까.


어느 봄날 어머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윤정아, 너 여기 와서 나랑 같이 살면 안 되겠냐? ○○이가 이 집을 차지하려고 난리여. "


어머님은 구체적인 계획까지 내게 전해주셨다. 한 일 년 작은 방에서 지내다가 니들이 안방 들어가면 ○○이도 암말 못할 것이라고.. ○○이가 자꾸 먹을 걸 보내준다고.. 이 집 차지하려고 그런 거지 않겠냐고.


"어머님 혼자 계시니까 챙겨드리는 것이겠지요."

"내가 그런 것도 모르겠냐? 눈치가 빤한데?"


어머님께서는 이상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생각에 갇히게 되셨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괴로우실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안다. 어머님께서는 그 괴로운 고통 속에 갇히게 되신 것이다. 그게 '병'이라니 혼자서, 아니 어쩌면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감옥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느 날에는 목소리가 괜찮으시다. 숨겨 두었던 통장 가방을 찾으신 걸까. 그간 통장가방을 숨기셨다가 못 찾으시곤 한탄하시고 다시 찾으셨다가 또 숨겨서 못 찾으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행동이 본인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은 아침 통화땐 괜찮았는데 오후에 다시 전화를 하시곤 나에게 까지 역정을 내셨다. 통장지갑을 왜 가져갔느냐고... 나라도 믿으셔서 다행이라 여겼는데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아직은..."이란 생각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얼마 되지 않는 시기에 곁에서 돌봐드려야 하는 시간이 오게 되지 않을까 싶다. 힘든 시간이 날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님의 고통이 주변을 점점 물들이고 확장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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