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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n 29. 2024

이 녀석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

나이 듦에 대하여

혹시 체스를 아시나요?

제게는 어릴 적 해보지 않은 무지의 영역입니다.

해본 적이 없기에 "즐길" 수 없습니다.

사실 별 호기심도 흥미도 없습니다.

새로이 게임 규칙을 익히고  "암기"해야 하는

제게는 "노동"같은 존재입니다.


언제부턴가 새로이 무언가 머릿속에 입력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나이 탓일까요.

정말로 하기 싫습니다!


근데 요즘 그걸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엄마랑 하고 싶어~~~"

"엄마랑 놀면 더 재밌단 말이야~~~"

라는 무기로 협박을 합니다.

어제는 거의 상대를 삐지게 만들면서까지 거부했습니다.

녀석은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어릴 때야 "육아"라는 명목으로 이것저것 함께 했지만

이제는 싫습니다.

죽도록 싫다구요~~~


지금 생각해 보니 녀석은 어릴 적부터 날 힘들게 했습니다. 끊임없이 요구 사항을 뱉어냈습니다.
책 읽어 달라고 계속 들이밀었죠. 하루종일 읽고 눈 감는 순간까지 토시 하나라도 본인 기억과 틀리면 다시 읽어야 했습니다. 책이 얼굴에 파묻힐 때까지 읽다 잠이 드는 루틴이 계속되었습니다.


녀석이 잠든 시간은 컴퓨터 앞에서 이것저것 검색하고 주문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또.. 또~~~"라며 새로운 것을 찾으니 말이죠. 책이며 장난감이며 스티커북 등등..  아이가 자라는 만큼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습니다.
스티커북이며 만들기 책에는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뒷면이 있었습니다. 각종 시리즈를 잘 진열해 두었습니다.
"이런 거도 더 많이 있으니 얼른 엄마에게 사달라고 해~" 라며 끊임없이 쏟아내는 광고들... 녀석은 조그마한 머리로 우찌 그걸 알아차렸을까요.


남들은 엄마가 앞장서서 이것저것 시켜주려는 육아라면 늙은  엄마(40에 낳은 녀석)는 녀석을 응대하랴 아픈 친정엄마(엄마가 뇌졸중으로 누워계셨음) 챙겨드리랴.. 한 시간씩 한 시간씩 버텨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엄마가 끌려가는 육아였습니다. 같이 놀아주기를 원하는 녀석은 내게 그야말로 힘겨운 "일거리"였습니다.


보통은 폰에 일찍부터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지만 난 언제부터가 폰에게 녀석을 맡겨버리는 것이 수월했습니다. 참 인생은 관점에 따라 다른 결과물을 만들더라고요.
폰으로 노래도 배우고, 종이접기도 배우고,  과학 이야기도 듣고... 참으로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겐 유익한 존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전 그냥 방치(?) 육아를 택했습니다. 학생들 과외 시간에 녀석을 잘 돌봐주는 육아 도우미로 도움을 톡톡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위로하면서...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흘러 왔을까요. 녀석이 폰을 보는 나이가 되면서 한결 수월해졌다고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녀석은 이제 6학년이나 된걸요. 폰이 최고의 장난감인 나이가 되었다 말입니다. 그런데 어제는 왜 그리 또 보챘던 걸까요. 이제 겨우 지친 육아에서 졸업했나 했었는데...


내가 녀석에게 놀이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려 썼던 방법을 도로 제게 돌려주면서 절 끊임없이 설득합니다.


"엄마, 이거 화투보다 쉬워요~~~!!"

"그냥 안 외우고 해 보면서 배워요~ 엄마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단순히 같은 그림 찾기, 짝 맞추기, 간단한 게임 규칙 알아보기에 좋겠다 싶어 소개한 화투가 체스로 변신해 제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녀석이 나이 든 엄마에게 육아를 하려 하네요..ㅎ


그렇지만 아무리 애원해도 나의 뇌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미 강한 필요와 욕구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열 수 없는 뇌가 되어버렸습니다. 너무 지쳐있었나 봅니다.


"그냥 우리 오목이나 하자~!!"


적당한 타협 선에서 찾은 나의 돌파구입니다.

다행히 받아주더군요.


휴우~

녀석과 웃으면서 게임을 마쳤습니다.

다행입니다. 

녀석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너는 모르겠지. 50대의 뇌와 10대의 뇌는 다르단다]




* 이해받고 싶었나 봅니다.

경어체로 겸손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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