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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Jun 30. 2024

익숙함을 향한 그리움

내 나이 쉰. 그야말로 아줌마. 몇 해만의 친구와의 통화에서 그 익숙한 목소리에 가슴 일렁였던 바로 그 아줌마.

잠깐의 통화를 마치고 폰을 내려놓고서야 알았다.

내 가슴이 뛰고 있었음을...

그런데 그 원인을 알 길이 없다.

친구가 반가운 건 맞지만 이게 가슴까지 뛸 일인가 말이다. 오랜만에 느껴 본 그 낯선 떨림을 마주해 생각해 보니 그 친구의 "낯익은" 느낌이 좋았던 거 같다.

요즘 너무도 낯선 것들에 적응이 버거웠나 보다.


육아의 터널을 벗어나 한 두 명씩 중학생 아이들 수학 공부를 봐주기 시작했다. 물론 간판도 없는 공부방을 남들이 알 리 없다. 고등학교 친구가 딸내미를 부탁하면서 나의 일은 다시 시작되었다.

예전의 경험과 자신감이 있었으니 중학생 수업 정도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어온 고등학생 수업을 맡게 되면서 버거움을 느꼈다. 첫 애 낳기 전에 수업했던 내용은 문제로 다뤄지지도 않고 새로운 유형의 문제들이 등장한 것이다. 수학 수능 문제도 유행을 타고 있었다. 끊임없이 풀고 또 풀었다. 사실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그 시기에 세상은 또 변화를 이어갔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나처럼 변화에 버거운 사람은 쫓아가기가 힘이 든다.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봐도 모르는 노래가 반이고, TV에 나오는 연예인 얼굴들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키오스크니 자율 주행이니 AI니... 세상엔 새롭게 적응해야 할 것들 투성이다. 학교 알림장도 간단히 폰으로 확인하는 세상. 겨우 하나 적응하면 익숙해지기 전에 또 다른 발전에 내 몸을 실어내야 한다.


좀 쉬고 싶었나 보다. 나만의 템포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다. 그럴 때 우리 집 큰 아이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전편에 소개한 체스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체질적으로 '갈등'이란 상황을 못 견뎌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에서 유래한 것일지라도. 그것도 힘듦의 무게에 추가되었다. 차곡차곡 무게가 늘어난 셈이다.


난 먹는 것도 익숙한 것이 좋다. 요즘 대세라는 마라탕도 무슨 향수를 먹는 거 같아서 두 번은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요즘 너무 가혹하다고. 좀 고 싶다고 외치고 있었다. 체스 사건은 그 절정에 있었다.


그 와중에 낯익은,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내 를 통해 흘러들어오게 된 것이다. 가슴이 일렁이는 것이 맞았다. 그 친구였기에 가능했겠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그것들이 그리웠나 보다.


[그리움에 대한 정체를 알았습니다]




*  앞선 글들 중에서 <친구 목소리>와

   <이 녀석과 잘 지내고 싶습니다>를 참고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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