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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에게 실망할까?

-물구나무서서 생각하기

by 물구나무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나는 이 나라에 살고 있고, 이 나라에서 숨 쉬고, 이 나라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정치가 달라지면 내 인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생각을 한다.
이번에도 또 실망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재명도 결국, 다를 바 없는 사람이면 어쩌지?
내 마음은 기대와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아니, 사실은 ‘절박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이제는 정말로, 제발 한 번만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 나라, 지금 썩었다.
정치가 썩었고, 기득권은 썩었고, 국민은 고통받고 있다.
물가가 오르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없는 자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대로라면, 도대체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 걸까.

나는 이재명을 좋아한다.
그의 말투, 그의 눈빛, 그의 분노에는 ‘생활의 냄새’가 있다.
겉치레 말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난 말 같아서 좋았다.
그는 가진 게 없던 사람이다.
그래서 가진 자의 고통이 아니라, 없는 자의 절망을 더 잘 이해할 거라 믿는다.
그런데도…
나는 겁이 난다. 또 배신당할까 봐.
또 믿고 나서, 혼자 무너질까 봐.

배신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정말 진심으로 지지했다.
그의 조용한 카리스마, 온화한 표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줄 사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내 청춘이었다. 내 자존심이었고, 내 정의감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문 대통령에게 바랐다.
부디, 부디 그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맞이하게 됐다.
정말 참담했다. 무너졌다.
그날 나는,
정치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믿음도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꼈다.

이낙연도 있었다.
국무총리 시절 그는 말을 정말 잘했다.
품위 있었고, 논리 정연했고,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시원하게 반박하는 모습은
잠시나마 통쾌함을 안겨줬다.
하지만, 결국 그도 말뿐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책임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김문수를 지지한다고 한다.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이 진심이었을까? 의심하게 됐다.
진심이 아니라면, 그때 내가 받았던 위로와 감동은 무엇이었나.
그저 잘 포장된 쇼였던 걸까?

이준석도 마찬가지다.
젊다는 것 하나로 기대를 걸었다.
새로운 세대, 다른 감각, 다른 방식.
그가 정치의 물꼬를 바꿔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스스로의 말에도 책임지지 않고,
실언하고, 남탓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모습만 보인다.
그를 지켜보며 나는 또 한 번 혼자 희망을 품은 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희망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마음의 문을 닫아갔다.
믿음을 거두고, 기대를 줄이고,
스스로를 방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다시 마음이 열린다.

왜일까.
그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대본 없이 정책을 술술 말하고, 수치를 정확히 기억하며
정책의 방향과 근거를 설명하는 모습에서
준비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는 겉멋이 없다.
감정이 드러나고, 때론 거칠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다.
그는 대통령 자리를 원한다기보다,
일할 자리를 원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게 나에겐 믿음의 출발점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배신당하고 싶지 않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나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내가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고,
때로는 나를 무시했고,
때로는 나를 밀어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나에게 단순한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내 삶의 명운이 걸린 선택이다.

이 나라가 바뀌면,
내 인생도 바뀌지 않을까.
희망이란 걸 다시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더 크고 멋진 꿈을 꿔보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무시하던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말하고 싶다.
“봐라, 나도 여기까지 왔다”라고.

그런 내 마음을 이재명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정말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
그가 정말 ‘실력’으로 나라를 이끈다면,
나는 내 남은 인생을
‘정치에도, 사람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제발, 배신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제발, 믿어도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제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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