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해라 해! 대신 시작도 해라!
알람이 울린다. 3시 50분이다. 10분만 더 자야지.
눈을 감아도 마음이 편치 않다. 10분 더 자려다 아예 못 일어나는 수가 있다. 몇 번을 고민하다가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바닥을 쓱쓱 끌며 걷는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나 싶다가도 다시 눕고 나면 후회할 걸 알기에 기어이 창문을 열고 커피를 끓인다.
잠이 깰수록 다시 침대로 가지 않은 나를 칭찬한다. 잠시 흔들렸지만 유혹에 넘어지지는 않았다. 덕분에 오늘도 새벽 시간을 '누릴 수' 있겠다.
새벽 4시에 일어난 지는 1년이 조금 지났다. 처음엔 6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허벅지를 몇 번이나 찔렀는지 모른다. 내려오려는 눈꺼풀과 버티려는 나의 싸움에서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면 책을 들고 거실을 돌아다녔다. 책을 들고는 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저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4시에 일어나 새벽 시간을 누리고 있다. 가끔 늦잠이라도 자면 누리지 못한 새벽 시간이 그렇게나 아쉽다. 다음 날 알람 몇 개를 더 맞추어 기어이 일어나고야 만다. 새벽에만 누릴 수 있는 이 시간의 소중함을 알기에.
시작은 불순했다. 내가 아닌 남편을 깨우기 위함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데 별별 핑계를 다 대며 미루는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조금만 일찍 일어나서 시작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시작만 하면 누구보다 잘할 것 같은데. 끝장을 내 버릴 남편 성격을 알았기에 시작을 하게 만들고 싶었다.
회사일에 지쳐 점점 무기력해지는 남편의 10년 전 꿈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룬다면 회사 일에도 도움이 되었고, 우리 노후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내 뜻과는 다르게 남편은 안 할 이유만 찾고 있었다. 안 할 이유는 많았다. 회사 일이 많고, 퇴근하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고, 그게 그렇게 쉬운 시험도 아니고, 나중에 더 편해지면 그때해도 하겠다는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이 없는 시간만 되면 오락을 했고, 새벽에 일어나도 게임기를 켰다. 얼굴에는 근심 걱정이 쌓여가는데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게임 속 세상으로 현실을 피하고 있었다. 몇 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시작을 하려 하지 않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오빠, 내가 마지막으로 말할게. 회사에서 퇴직 후에는 뭐 할 거야? 은퇴 후 계획은 있어? 회사 일이 한가해지지 않으면 결국 계속 미룰 거야? 부서 옮겼을 때 일이 더 편해진다고 누가 그래? 그때도 힘들면? 쉬운 시험이 아니니 언젠가 시작해야지.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시작하는 게 낫지 않아?"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듣던 남편. 갑자기 내 눈을 마주하고 한마디 한다.
"마누라, 나 욕 좀 해도 되나?
에이, 삐리리~~~"
기분은 나쁘지만 욕을 하는 이유도 알 것도 같았다. 본인도 답답했겠지. 게다가 말은 쉽지. 내가 할 것도 아니면서 저렇게 말하는 내가 얼마나 얄미웠을까.
반박할 말이 없었단다. 그런데 기분은 좋지 않고, 한 번은 꿈틀 하고 싶어 평소에는 하지 않던 욕이 흘러나왔단다. 물론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는데, 그거야 알 길이 있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했다. 덕분에 제대로 욕도 들어먹었다.
말을 멈추고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네가 시작 안 하면 나라도 시작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남편이 시작하기만 하면 잘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도서관에서 자기 계발에 관한 책을 읽었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새벽 기상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실천하기에도 가장 쉬워 보였다. 무엇보다 남편에게 보여주기에도 딱이다. 새벽에 일어날 알람을 5개씩 맞췄다. 처음엔 6시에 일어나기도 힘겨웠다.
남편에게 보여주려 시작했는데 고요한 아침 시간이 점점 좋아졌다. 엄마를 찾는 아이들도 없고, 당장 해야 할 집안일도, 일도 없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시원한 새벽 공기를 맞으니 고등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독서실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나만의 생각에 잠겼던 그때 그 시절로 말이다.
더 오래 누리고 싶었다. 알람을 조금씩 당긴다.
엄마, 아내가 아닌 오롯이 내가 될 수 있는 새벽 시간이 점점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