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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단 May 07. 2024

Joy 할머니는 Joy 할까?

control freak


5번 테이블이 시끄럽다. 서늘한 긴장이 느껴진다. 내가 막 음료 서빙을 마친 후다.


"Erin이 오렌지 주스를 두 잔 째 받았잖아?"라고 Joy가 말하니 "아까 Erin이 주스를 쏟았어"라고 Tom이 설명한다.

"Erin은 주스를 한잔만 마셔야 해"라고 Joy가 또 말하니까 "아니 아까 Erin이 주스를 쏟아서 못 마셨다고."라고 Tom이 다시 말한다.

Joy는 이미 화가 올라있고 Tom이 하는 말은 듣지 않는다.  "Doesn't matter."라고 두 손을 저으며 말하더니 'Erin은 주스를 한 잔만 마시기로 되어있어'라는 혼잣말을 한다.(초기 치매 상태인 Erin은 당뇨가 심해서 오렌지 주스와 물을 섞어서 드린다.)


Joy가 'Doesn't matter'로 대화를 종료하려고 할 때 Tom이 한 번 더 설명하려고 하자 Tom 옆에 앉은 Helen이 왼손으로 Tom의 오른쪽 손목을 살며시 누른다. 그만하라는 의미다. 손목을 누르는 순간에 나와 Helen의 시선이 마주쳤고 우리는 서로 눈을 찡긋하며 무언의 공감을 나누었다. Joy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Helen과 나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Assisted Living Facility의 다이닝 룸. 어시스티드 리빙 빌딩의 주민과 인디펜던트 빌딩의 주민들이 식사는 이곳에서 함께 한다.

위 대화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부연 설명을 해본다.


요리가 나오기 전에 식당 직원이 먼저 음료수를 서빙하는데 Erin이 그때 받아 놓았던 주스를 쏟았나 보다. Erin 앞에 앉아 있던 Tom이 나를 불렀다. Erin이 쏟은 주스 때문에 테이블 매트와 냅킨이 다 젖어있었다. 그것들을 깨끗한 것으로 바꿔주었지만 Erin의 빈 컵을 다시 채우지는 않았다. 그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주민들이 끌고 온 워커를 다이닝룸에서 복도로 옮겨놓는 것이었고 또 어차피 요리가 서빙되기 시작하면 우리 Care Aide들이 음료수를 한번 더 서빙하면서 원하시는 분들의 잔을 채워드리기 때문에 그때 Erin의 컵에 주스를 따라 드릴 생각이었다.


문제의 5번 테이블에 음료를 서빙할 때 Erin의 빈 유리컵에 오렌지 주스를 채워드리고 그 옆 테이블로 다가갈 때 즈음 Joy가 Erin 옆에 앉으면서 위에 썼던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식당에 늦게 온 Joy는 Erin이 유리컵을 넘어뜨린 것은 보지 못했고 이미 오렌지 주스를 따른 흔적이 있던 컵에 다시 주스를 가득 채우는 것만 본 것이다.(Joy 할머니 시력이 그렇게 좋은 줄 몰랐음. 걸어오면서 컵에 남은 주스의 흔적을 봤다고?)


주스를 쏟았었다는 것을 모르는 Joy는 Erin이 한 잔을 이미 마셨는데 또 주스를 준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옳다. 이 상황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생각에 꽂힌 그녀의 귀에는 Tom의 설명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Joy는 모든 걸 자기가 컨트롤해야 하는 control freak이다. 자신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는 뉘앙스가 살짝만 느껴져도 얼굴 표정이 변하고 대화를 끊는다. 주로 "Doesn't matter" 또는 "Never mind"라며 두 손을 공중에 한번 흔들면서 대화를 종료시킨다.

평소에는 인자한 미소를 띠며 모든 사람을 애정한다는 듯이 식당에 앉아 있는 주민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한 후에야 자기 자리로 가서 앉지만 뭔가 뒤틀린 날에는 구겨진 표정으로 자기 테이블로 직진한다. 두 얼굴의 차이는 극명하다.

Joy를 볼 때면 구십 평생을 저런 식으로 살아왔을 텐데 그녀의 대인관계는 어땠을까? 그래도 지금 그녀 곁에는 누군가 남아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control freak은 타인이나 환경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사람을 지칭하는 심리학적 속어다. 우리말로는 지배광 혹은 통제광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Erin이 두 잔의 주스를 받았다며 Joy가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을 낸 것처럼 control freak은 자신의 기준이나 예측을 벗어날 경우 상대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은 완벽하고 무조건 옳다는 생각이 강하고 사람들의 문제나 세상에 대한 답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게 자신의 계획이나 통제 하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안될 경우에는 그 자리를 떠나거나 통제가 가능한 부분에만 관심을 보인다. (Joy가 'Doesn't matter' 한마디 뱉고 대화를 종료시킨 것처럼)

타인을 잘 도와주는 듯하고 오지랖이 넓어 보이지만 사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못 믿는다. (평소 Joy는 마더 테레사의 미소를 장착하고 식당 전체를 돌며 인사를 하고 몇몇 주민께는 직접 교회 주보를 나누어준다.)



control freak은 겉으로는 굉장히 고집스럽고 이기적이고 강해 보이지만 사실 이들의 내면에는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상대에게 버림받거나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주변을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통제가 안되면 무력감을 느끼고 통제가 되면 불안이 사라진다.


이들은 자신에게 결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control freak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다. (물론 안다면 애초에 control freak으로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본인의 통제광적인 행동이 상대를 떠나게 만든다는 사실도 모른다. control freak은 인간관계에서 의견 충돌을 겪게 되거나 짜증을 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신은 상대에게 최고의 해결책을 알려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자기 의견을 매번 무시하고 조종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control freak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은 관계가 망가지게 되는 것이다.




혹시 본인이 control freak이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먼저 스스로를 솔직히 탐구해야 한다. 당신이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부디 귀를 열고 듣기를 바란다. 이런 성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신이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내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힘든 과정이다. 자신이 완벽을 추구하고 상대를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변화의 출발점에 섰다. 이제 시작이다.


자신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이 저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 그래서 자기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지나치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감정이다. 만약 자존감과 자기 가치감이 높다면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 존재 가치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 자기 가치를 상대방에게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상대를 지배하지 않아도, 자신이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것을 혼자 해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분들은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교정할 수 있는 '인지-행동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감정이나 행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나 내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상담이 진행된다. 그러니까 인지의 변화를 통해 행동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자존감을 높일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꾸준히 자기 변화를 위해 노력해 가자. 그 끝에는 가볍고 자유로운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Joy 할머니처럼 평생 동안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면서 살아간다는 건 너무 힘겹고 불행한 일이다. 할머니의 이름처럼 즐겁고 기쁨이 넘치는 인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control freak 자가진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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