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2박 여행기 - 1편
내가 만든 동갑친구들의 모임인 R그룹이 있다. 곧 이년이 되어 간다. 처음 R그룹을 만들 때 스무 명을 정원으로 신청을 받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적인 이유로 탈퇴를 하거나 그룹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 강퇴를 당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현재는 총 아홉 명의 친구들이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나는 보통 Best Friend과 Good Friend으로 친구를 분류하는데 어느 유명 강사의 유튜브에서 '슈퍼' 친구와 '삽' 친구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다.
슈퍼 프랜은 정말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한 친구이고,
삽 프랜은 "나 시체를 묻어야 해"라고 말할 때 "그래? 삽 어디 있어?"라고 대답하는 친구라고 한다.
그 강사는 삽 친구가 있다면 정말 행운이라고 했다. 두말 않고 친구의 범죄를 덮어주고 그 길에 동행할 수 있을 정도의 친구. 나에게는 그런 삽 친구는 없는 것 같고, 나 역시 삽 친구가 되어줄 만큼 친구관계에 올인하는 게 좋은 선택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가면 나의 고향처럼 포근히 반겨주는 슈퍼 친구가 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편안한 나의 코흘리개 시절 친구들이다.
베스트 프랜과 굿 프랜에 대해 말해보자면, R그룹을 이 년여 이끌어 가는 동안 시간이 지나면서 Best와 Good으로 나뉘는 것을 느낀다. 모두가 좋은 친구이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을 터 놓고 무슨 말이든 편안히 할 수 있게 된 친구가 있고 아직도 속 얘기까지는 선뜻할 수 없는 친구도 있다.
만남의 횟수가 쌓이면서 다섯 명의 친구는 털어놓기 쉽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들까지 나누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베스트 프랜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상대가 벽을 치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더 이상 가까이 갈 수 없는 친구가 있는데 이런 친구들과는 적당한 거리에서 적당한 웃음만 나누는 정도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굿 프랜이 네 명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굿 프랜도 소중한 친구라는 것.
만약 우리가 어린 나이라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속내를 다 털어놓으면서 가까워지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빠르게 가까워졌다고 해도 시기와 질투, 배신 등으로 인해 언젠가는 최악의 친구로 바뀔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굽이굽이 인생의 고비를 다 넘어본 후에 만난 오십 중반의 친구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알고
서로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할 줄 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행복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비교하지 않고 '나 자체'로 살면서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게 행복이라는 것을 안다.
이렇게 좋은 나이에 만난 우리는
한번 베스트 프랜이면
영원히 베스트 프랜이다.
BF 중 한 명은 반드시 처리해야 하는 비즈니스가 있어서 빠졌고 네 명이 라스베가스 2박 여행을 다녀왔다. 공교롭게도 우리 네 명의 영어 이름이 모두 J로 시작해서 J sisters라고 서로를 부른다.
여행 일정 짜기, 호텔과 식당 예약하기, 비행기 티켓 예매하기, 여행 중 돈 관리하기 등 역할을 분담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환상적인 호흡으로 순조롭게 여행을 마쳤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 여행을 이야기하며 또 설레었다.
Good job BF!! :)
친구들과 하룻밤 캐빈에서 지낸 적은 있지만 네 명이 한 방에서 한 개의 욕실을 나눠 쓰는 여행은 모두가 처음이었다. 적응력 갑인 나는 걱정되는 게 하나도 없었지만 남편 앞에서도 옷을 안 갈아입는다는 친구는 살짝 긴장했다고 한다. 뭐 이박삼일 동안 떵까지 튼 사이가 되고 나니 결론적으로는 전보다 더 편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 :)
두 달 전에 개장한 돔 모형의 공연장 Sphere. 우리가 여행하는 날에는 F1 라스베가스 그랑프리 경기 때문에 돔이 열지 않아서 가지 못했지만 운 좋게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중에 이렇게 멋진 사진은 찍었다. 베네시안 호텔의 컨벤션센터가 있는 층에서 Sphere 가 적혀있는 사인을 따라가면 호텔과 이어져 있는 무빙 워크웨이(Moving Walkway)를 지나가게 되고 그 끝에 공연장 입구가 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인증샷을 찍었다.
다 같이 오른쪽으로 갸우뚱~ 왼쪽으로 갸우뚱~
오십 중반의 아줌마들도 이런 거 하면서 논다구!! :)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우버를 타고 라스베가스의 다운타운에 있는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리언스(Fremont Street Experience)에 갔다.
이곳은 보행자 전용 구역이다. 이 거리의 상징인 LED 아치형 천장 'Viva Vision'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비디오 스크린 중 하나라고 한다. 이 천장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빛의 쇼가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천장 아래에 보이는 긴 전기선은 집라인을 위한 것이다. 걷다 보면 천장 위를 나르는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라이브 음악과 여기저기에서 펼쳐지는 거리공연이 관광객의 흥을 돋우고, 곳곳에 서있는 야한 옷을 입은 언니, 오빠들이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이들은 관광객을 유혹해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얌전히 찍을 때와 언니 오빠들 몸을 만지면서 찍는 비용이 다르다고 했다.
우리 회사의 필리핀 동료가 이곳에서 야한 오빠들 사이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녀의 입이 귀에 걸렸,,, 입 찢어진 줄,,,, :)
뭐든 다 해보고 싶었던 중년의 아줌마 넷이 모였지만 차마 이런 사진을 찍을 용기는 없더라.
"저 오빠들이랑 사진 찍는 사람은 오늘 저녁식사값 안내도 된다!"면서 공약만 날렸던 순진한 아줌마들이여, 사랑합니다 :)
프리몬트 스트리트 익스피리언스 주변 볼거리
슬롯질라 집라인 - 77m 높이의 슬롯머신 모양의 타워에서 출발
비바 비전 - 1억 3천만 개의 LED조명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LED 스크린
골든 나겟 호텔 & 카지노 - 거대한 금색 상어 모양의 수조가 있다
엘 코르테즈 호텔 & 카지노 - 1941년에 오픈. 복고풍의 분위기
네온 박물관 - 1930년대~현재까지의 역대 라스베가스의 유명 네온사인을 모아놓았다
다운타운 컨테이너 파크 - 폐쇄된 화물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조성된 공원
몹 뮤지엄 - 마피아와 미국 조직범죄의 역사를 전시
라스베가스의 명물로 알려진 핫 앤 쥬시에서 저녁을 먹었다.
라스베가스에 4개의 핫 앤 쥬시 매장이 있다고 한다. 매인스트립 중심으로 세 군데 그리고 우리가 갔던 프리몬트 스트릿 주변에 하나. 새로 생긴 이곳이 웨이팅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정보를 인터넷에서 미리 입수했기 때문에 프리몬트 스트릿 구경을 다 끝내고 들렸다.
한가한 매장에서 여유롭게 라스베가스에서의 첫 식사를 마쳤다. 맛있었다 :)
Hot N Juicy Crawfish 프레몬트 스트릿 근처 매장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우버를 타고 스트립에 있는 벨라지오 호텔을 갔다. 라스베가스에서 꼭 해야 할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분수쇼를 보기 위해서였다. 멋진 밤 풍경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분수쇼도 F1 레이스 경기 때문에 취소되었다고 했다. 내일 O Show를 보기 위해 벨라지오 호텔에 다시 올 예정이라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왔다.
벨라지오 분수 쇼 공연 시간 : 15분 혹은 30분 간격으로 3분~5분 정도 지속
월요일 ~ 금요일: 3pm-7:30 pm (30분마다) 8pm - 12am (15분마다)
토요일, 일요일과 공휴일: 12pm - 7:30 pm (30분마다) 8pm - 12am (15분마다)
우리가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다음날이 미국 그랑프리 F1 연습 레이스가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야간에 경기가 열린다고 했다.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담는 것이 목적이라 밤에 레이스를 해야 한단다.
이 경기를 위해 도로 주변에 높은 가리막이 설치되어서 가까운 거리도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교통체증도 심했다. 그리고 벨라지오 분수쇼와 Sphere 공연처럼 핫플의 스케줄이 취소된 것도 아쉬웠다. 마치 라스베가스 스트립의 모든 것이 F1 경기를 위해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우버 드라이버 말에 의하면 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엄청난 부자들이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각국에서 날아와서 공항도 그들의 비행 스케줄에 맞춰 폐쇄하고 또 그들이 쓰고 가는 돈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액수이니 일반 관광객의 불편함은 라스베가스 정치인들의 관심 밖이라고 한다. 교통 체증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평 소리도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다며 부자들을 위한 F1경기에 서민은 울고 있었다. 그분의 말을 들으니 잠시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부자들을 위한 사회, 정치, 경제... 서글프다.
하지만 다음날 내 느낌에 반전이 있었다. 나란 놈, 이토록 쉬운 뇨자 였던가!
우연히 훔쳐보게 된 레이싱. 시속 300km가 넘는 차들이 내뿜는 소리에 저절로 흥분되던 심장이여! 그 순간에는 부자니 서민이니가 의미 없었다.
'와 직접 보면 이런 기분이구나!!'라는 감탄만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저녁에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오던 중에 우연히 잡은 장면이다. 경주차가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에 심장이 쫄깃쫄깃, 빠르게 흥분 최고점을 찍었다. 와, 다시 봐도 좋고도 조코나 :)
이렇게 라스베가스 시가지 중심에서 자동차 경주 대회가 열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평소의 일반도로가 가리막으로 막힌 경주용 도로가 되어있다.
여행 이튿날 아침이다. 플래닛 할리우드 리조트 & 카지노에 있는 고든램지버거를 먹기 위해 왔다. 이곳은 예약을 해도 기다려야 한다는 정보를 듣고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더니 줄 서있는 사람이 없었다.
잠깐 건물 밖으로 나가 봤더니 하늘이 너무 이뻤다. 푸른 하늘 위로 날아갈 것 같은 패리스 호텔의 열기구 사인판 뒤로 에펠탑도 보인다. 패리스 호텔에는 '고든램지 스테이크'가 있는데 좀 더 클래식한 레스토랑이다. 이곳도 인기가 많다.
라스베가스 대부분의 호텔에는 카지노가 있다. 물론 J sisters 도 지난밤에 공금에서 각자 20 불식 할당받아 머신 앞에 앉았다. 흠,,, 뭐 20불 사라지는 건 순삭이었음 :) 기계를 다루는 방법을 몰라서 아무 버튼이나 눌러 댔더니;;; 네네넹, 잭팟의 꿈보다 기계 사용법을 먼저 배우셔야 ;;;
지금은 한국에도 입점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우리가 이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밴쿠버에도 고든램지버거가 오픈했다. 아직 밴쿠버의 고든램지버거에는 가보지 않았는데 라스베가스의 버거맛이 훨씬 좋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음, 가볼까 말까 아직도 생각 중 :)
고든램지버거는 오픈 주방이지만 우리가 앉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레스토랑 안에 Bar도 있고 맥주의 종류도 다양하다. 이곳의 음식은 다 비싸다. 하지만 라스베가스의 명소 중 한 곳이어서 골랐는데 식사 후 음식 맛에는 모두가 대만족. 투썸업 했다. 그래서 가격과 칼로리는 잠시 잊기로! :)
라스베가스에 가면 카지노와 쇼 관람은 꼭 해야 한다고 했다. 카지노는 내 취향의 오락이 아니었고 쇼 관람은 너무 기대가 되었다.
라스베가스의 3대 쇼라고 하는 O Show, KA Show 그리고 LE REVE Show 중에 우리는 O Show를 예약했다. 'O'는 프랑스어로 물을 뜻하는 'eau'의 발음이라고 한다. 쇼의 이름 그대로 물을 이용한 공연이다. 그런데 LE REVE Show는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영구 폐업되었다고 한다. 멋진 쇼 한 가지를 평생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쉽다.
O show는 벨라지오 호텔에서 본다. 극장 리셉션에서 좋은 자리로 업그레이드 받아서 J sisters의 입 끝이 귀에 걸렸다 :)
(참고로 KA는 '불'을 이용한 쇼, 'Ka'가 일본어로 불을 의미한다고 해서 붙여진 제목. LE REVE는 '물과 빛'을 이용한 수중 곡예쇼)
150만 갤론의 물을 사용하는 수중 무대라는데 그 양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는 가늠이 안되지만 물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무대와 배우들의 멋진 공연의 감동은 어마어마했다. 배우들 모두가 인사를 하고 커튼이 내려질 때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찔끔, 안돼~~~ 끝나지 마아~~~ ;;; :)
멋진 쇼를 본 후에 아줌마들이 흥분하면 이렇게 된다. 뽀뽀하고 허그하고~~~ :)
최고의 친구들과 최고의 쇼를 보고 난 후에 밀려오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한 마음을 우리는 이렇게 몸으로 표현했다. 사랑한다 친구야!! :))
To Be Continued... J 시스터들의 in Las Vegas
여행 후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수많은 사진 속에 묻힌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지만 이렇게라도 사진을 모아 한 개의 글로 남겨두면 그날을 기억하고 싶을 때 쉽게 찾을 수 있고, 써놓은 글과 함께 또렷하게 그날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여행 후에는 사진일기 쓰기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