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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리연 Nov 20. 2024

Self Anatomy

1회차 - 나의 애착형성

나는 불안정 애착 중 회피 유형의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난 나만의 공간이 무조건 필요하고, 누군가 그 공간 안에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을 때 불안해지고 방어하기 급급하다. 

20대 때 나를 사귄 남자들은 시기가 달랐을 뿐 비슷한 말을 했다. 


"넌 너만의 투명 캡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투명해서 보이지 않아 다가가려면 어느새 차가운 유리 캡슐

에  부딪히게 돼. 난 그 캡슐 안으로 절대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니 곁에 있는 게 힘들어."


난 그렇지 않다고. 난 누구보다도 너를 좋아한다고 항변했다. 

꼭 남자친구가 아니어도 나에 대한 사람들의 첫 인상은 대략 비슷하다. 

말 안하고 있으면 차가워 보인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as cold as a cucumber(오이처럼 냉정하다)" 라는 말을 종종 영어로 한다.

그 말에 내가 쳐다보면, 그냥 고등학교 때 배운 숙어를 외우는 거라고 변명한다. 


그럴 때마다 난 조금 억울했다. 

난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람들한테 관심 많고 특히 약자에게 호의적이며 공감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려서 상처받기 싫어서 그냥 센 척 하는 것뿐이라고. 


그런데 삶을 이만큼 살다보니 깨달은 게 있다. 

다수가 그렇게 얘기하는 건, 다 일리가 있는 거라고. 맞는 말이라고. 


난 차갑다. 아니 사람과 세상에 냉소적이다. 

왜냐하면 사람과 세상을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피 애착이라 나 자신에겐 긍정적이나 타인에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나는 회피 애착을 갖게 됐을까? 

나도 안정적 애착을 가져서 타인에게 친절하고 스스로 상처도 덜 받으며 불안과 위기도 잘 해결해가면서 살고 싶은데... 

누구보다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내가 보는 세상과 그 속에 있는 타인이 어쩌다가 회색, 무채색이 됐을까? 


그렇지 뭐. 

그럴 줄 알았어. 

별 거 있겠어?


오늘 정신 분석 1회차를 했다. 

생후 1년까지 절대적 의존기에 주양육자의 절대적 몰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짧게는 한달. 

그러니까 난 주로 꾸준히 무관심 속에 있었기 때문에 회피애착이 된 거란다.   


대충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사느라 정신 없어서 나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걸. 

[그렇다면 난 얼마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걸까?] 라는 생각이 항상 나를 괴롭혔었다.

우리 엄마는 왜 나를 그렇게 방치했던 걸까?  

그 갓난 아이가 어디가 어떻게 별로였길래 최소 한달, 최대 1년만 몰입하면 되는 걸 못 해준 걸까?

바라던 아들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언니만큼 예쁘게 생기지 않아서 그랬을까?

이런 저런 추측이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없어서 너무 괴로웠다. 


오늘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나의 만 1세 무렵에 대한 사람들의 증언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너는 너무 너무 잠이 많아서 애기 요람에 눕혀 놓으면 밥도 안 먹고 잠만 잤다. 가끔 깨어나도 자기가 꿈틀거려 요람이 다시 흔들리면 또 자고. 그래서 가끔은 혹시 죽었나 걱정돼서 일부러 깨워보기도 하고, 배고플까봐 깨워서 밥 먹여 다시 재우기도 했어.]

 

가끔 어릴 적 기억이 없어서 엄마한테 "언제의 나는 어땠어?" 물어보면, "너는 항상 니가 알아서 잘 해서 별로 기억이 남는 게 없어... 참 순하고 착했지." 라고 엄마는 말씀했다. 

순하고 착한 아이. 

그래서 갓난쟁이 때부터 손이 안 가도 됐던 아이. 

때문에 엄마의 시선, 손길로부터 배제되어도 괜찮았던 아이. 

그렇게 나는 완전한 의존이 필요했던 시기에 일관적 방임을 받게 됐고,  

그렇게 별 다른 악의 없이 방치됐던 아이. 였던 거다.


그래서 나에 대한 타인의 관심은 원래 없는 게 마땅하다 여겼던 아이. 

믿을 게 나 하나밖에 없었던 아이. 

총체적으로 타고 나면서부터 조금은 불운했던 아이. 


그래도 위로가 됐다면. 

엄마는 내가 별로라서, 내지는 싫어서 나에게 관심을 안 준 게 아니라는 것. 

징징대고 울고 말썽피우는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손이 덜 타게 태어났기에, 그저 손이 덜 탄 아이라는 것이다. 


스킨십이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나는 요람 속에서 올곧이 나 홀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잘 때가 제일 행복한가...? 라는 생각도 문득 해보고. 

그렇게 이불에 집착하는 건가... 싶기도 하며, 

타인의 스킨십이 부담스러운지도 모르겠다. 


내 탓도, 

엄마 탓도 아닌. 

그저 손이 덜 타게 태어난 순둥이었다는 사실이...

아프지만 다행이다 싶다. 


원인을 알게 됐으니, 나도 이제 노력을 하면 후천적으로 안정애착을 획득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 노력이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믿고 싶다. 

강렬히!



< 정신분석 1회차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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