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힘없는 카스는 요즘 부쩍 매사가 귀찮다.
늙는다는 게 이런 건가? 지인들은 앞으로 4,50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DNA적으로 허약체질인 카스는 마흔줄에 접어들면서부터 백살 시대를 살 자신이 없다.
산책을 다녀와 울타리 문을 열려던 카스.
띠딕!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는다.
귀찮아서 볼까말까 망설이다 바로 삭제할 요량으로 열어본다.
그녀 성격상 빨간 1자는 허용되지 않기에.
[Web]으로 시작되는 단체 문자.
'그럼 그렇지...'
자동으로 삭제하려던 카스의 손이 멈칫한다.
이즈백의 부고였다.
그가 갔다.
IsBaek is gone…!
머리가 띵- 하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지만 울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고민한다.
그의 장례식엘 갈 수 있을까?
갈 자격이 있을까?
와도 된다고 문자가 허락을 했는데...
아마 이즈백의 휴대폰에 그녀의 연락처가 지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카스는 이즈백의 상주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멈춰 선 자리에서 선뜻 움직이질 못한다.
고민 끝에 검은 옷이 없는 카스는 가장 어두운 옷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오직 지금만이 이즈백이란 벽장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는 걸 알기에.....
부의금 봉투에 '카스'라 적는다.
부의금을 받는 사내가 힐끗 쳐다본다.
"넣을 만큼 넣었어요."
누가 그걸 물어봤냐는 눈빛으로 사내가 다시 한번 쳐다본다.
"고인이 싫어하진 않겠죠?"
- ... 와주셔서 감사해하실 겁니다.
사내가 예의 상투적 감사 인사를 건넨다.
카스는 그런 걸로 위안 삼기로 했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다른 세상, 아니 다른 우주 같다.
카스는 빈소로 들어가 이즈백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본다.
이즈백을 사진으로 본 건 처음이라 낯설다.
이즈백의 사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카스가 아는 이즈백을 사진이 얼마나 고스란히 담았을까... 궁금해하면서 사진을 오래도록 본다.
많이 닮진 않았다 생각한다.
카스가 모르는 세계에서의 이즈백은 이런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카스가 아는 이즈백은 이즈백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카스는 문상객으로서의 예의를 다 갖추지 못한다.
상주가 그런 카스를 의아하게 여긴다.
국화를 그에게 바치고 그의 명복을 빌고 상주와 맞절을 한다.
"얼마나 힘드세요..... 여기까지 와서 죄송합니다."
- ....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이즈백의 아들로 보이는 청년이 물음표가 가득한 눈으로 카스를 상대한다.
- 저의 아버지와는 어떻게...
"...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다 발길이 닿았습니다....."
- 아........... 네... 감..사.. 합니다.
어설픈 맞절을 하고 카스는 빈소를 나온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부고를 받은 이후 내내 참았던 눈물이다.
그래도 잘 참았는데, 직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무것도 아닌 무엇.
그것이 이즈백에게 카스의 존재였다.
이즈백의 가족을 처음 봤다.
카스는 생각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였던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를.
카스는 맥주잔에 소주 찌배기를 즐겨먹던 이즈백에게 그저 5도 수준의 알코올을 가진 한병 짜리 맥주였다.
그를 흠뻑 적셔주지도 못하면서 마시면 배만 부르고 머리만 아프게 하는 어설픈 도수의 마취제.
어설픈 현실 도피처.
그래도 이즈백 한 병과 카스 한 병을 나눠 먹으며 많은 끼니를 함께 했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사랑'이라 불리우는 그런 것도 나눴다.
취기가 깨면 헤어졌다.
그렇게........ 이십 여 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