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너무 쉽게 가겠다고 한 건 아닌지-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다린님의 '가을'이라는 곡을 좋아합니다.
제게 깊은 흔적을 남긴 사람들은 짝궁처럼 그와 꼭 맞는 향기와 음악을 함께 남깁니다. 그 중 어떤 계절이든 서늘함이 느껴지는 순간이 되면 불쑥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는데 그 기억들엔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씁쓸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럴때면 그 떠오르는 기억들을 최대한 세세하게 눈앞에 펼쳐보이려 '가을'을 찾아 듣죠. 보통의 저 같으면 행복한 것 보다 쓸쓸한 기억들이 떠오를까 두려워, 애써 그 순간은 외면할텐데 사람에 대한 기억만큼은 그 씁쓸한 기억마저 소중한가 봅니다.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든 제게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사람에 대한 당시의 제 마음이 현재의 제게 흔적으로 남아있는거겠죠. 사람때문에 마음이 힘들어서 시커멓게 뚤린 바닥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들 때 제가 떠올리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저의 아주 처음. 제가 어떠한 존재도 아닌 그저 어떤 '에너지'에 지나지 않을때, 신이든 우주든 거대한 누군가가 묻습니다.
근아야. 너 지구라는 곳을 한 번 여행해볼래? 눈 깜짝할새의 아주 찰나의 순간만 말이야.
'인간'이라는 존재로 지구를 여행하면서 너는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경험해 볼 수 있어.
사랑, 기쁨, 절망, 환희, 두려움, 슬픔 그 어떤 다양한 감정을 알 수 있는거야.
해볼래?
네!!!
이 이야기를 떠올리고 나면 저는 '거대한 어떤 존재'에게 아주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그런 존재에게 재미있는 제안을 받고 잠깐의 여행을 온 중인 듯 느껴집니다. 그러면 당장 내 눈앞의 모든 것들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게 되고, 다양한 감정에서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해요. '이 모든것은 결국 끝난다는 것' 그것은 인간에게의 최고 축복이란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땅에 행복하기만 하려고 오지 않았어요. 기뻐하던 중 맞이한 절망은 땅 끝까지 저를 끌어내리지만, 절망속에서 발견한 사랑은 그 거대한 누군가가 여전히 나를 소중히 돌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제게 상대적인 것이어서 상실감 없이는 얻는 것의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슬픔의 무게를 알지 못하면 기쁨의 값도 알지 못하고요.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다보면 제가 느끼는 그 어떠한 감정도 불필요하지 못합니다.
사람으로 다시 환원시키면, 그 사람이 없을 것이 두렵기에 지금 더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람이 내게 큰 행복을 주었기에 그 흔적으로 외로움이 남게 되는거죠. 그 중 무엇 하나가 없었더라면 다른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에게 그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그렇습니다.
또 그런 감정이 한 사람에게서 시작해 그 곳에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제 안에 경험으로 남아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을 배가 시키니까요. 다만 제가 조심하는 것은 이것이 나를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현재의 사람들을 단정짓고 판단하는데에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저 '소중히 여기는 것'에만 쓰려고 합니다. 제 삶은 금방 끝나니까, 다시 저의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는 날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매 순간과 감정에 충실하려 합니다.
특히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내 현재의 사람들에게 못다한 말과 행동이 남지 않도록,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표현을 잘 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곧 제가 '그저 에너지에 불과한' 그 존재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사람들이 / 그 사람들에 대한 저의 마음이 남긴 흔적들을 꼭 가지고 갈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게 흔적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흔적이길 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