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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Apr 15. 2024

[B] 영겁에 갇힌 기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걸까. (feat. 아이유 &  서승원 선생님)


나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받아들이는 법



일단, 아이유와 비슷한 나이대의 같은 여자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어떤 곡에는 어떤 면에서 발칙한 내용의 가사를 담으면서도 '한 번도 거짓으로 가사를 쓴 적이 없다.'라는 구절을 곁들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마땅히 좋아할 만한 내용이든, 반감을 살 수도 있는 내용이든 상관없이 그때의 자신의 솔직한 상태와 생각을 투명하게 가사와 곡조에 반영시키는 사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아이유다. 그래서인지 비슷한 나이대, 같은 성별 나아가서는 비슷한 감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 나로서는 가사의 글자 하나하나, 심지어 쉼표 하나에까지 공감하지 않을 없었다. 



Simultaneity 19-952, 2019, Acrylic on canvas, 162 × 130.3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오늘은 비가 내린다.

그렇게도 학수고대하던 '봄 비'.

추워서 움츠리고 있던 몸에 담긴 마음도 덩달아 몸과 함께 움츠려 있다가 따스해지는 기온에 녹는 계절이다. 그렇게 녹고 보니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고질적인 생각들이 고개를 든다. 바로 ''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 그저 어제의 나보다 5원어치 더 잘 살고 싶고, 5원어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리 어렵게 제자리다.


살면서 참 많은 노력을 한다. 사소하게는 오늘 아침에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몸을 일으켜 팔다리를 딛는 일. 그래서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하는 일. 사람들과 더불어 살겠다고 참고 또 참고, 그러다 터뜨리고 또 수습하고. 사람들을 듣고 보고 느끼고 표현해 주고. 내일을 꿈꾸고, 어제를 참고, 지금을 살아내는 한 순간도 쉴 틈 없는 노력의 연속이다. 그럴 때면 꼭 한 번씩 '내가 고갈되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세상에 뭐가 그리 중한가. 그냥 생긴 대로 살자는 마음이 들면서 그 모든 노력을 최대한 안 하고자 또 이상한 노력을 한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다 눈을 뜬 곳은 맨 처음 그 자리다.



그때 생각나는 곡이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라는 곡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있지

내가 날 온전히 사랑하지 못해서 맘이 가난한 밤이야


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쌓이는 하루만큼 더 멀어져 우리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어린 날 내 맘엔 영원히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었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희미한 그곳엔 

설렘으로 차오르던 나의 숨소리와 머리 위로 선선히 부는 바람 파도가 되어 어디로든 달려가고 싶어


작은 두려움 아래 천천히 두 눈을 뜨면 

세상은 그렇게 모든 순간 내게로 와 

눈부신 선물이 되고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선 너머에 기억이 나를 부르고 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목소리에 물결을 거슬러 나 돌아가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두 번 다시 날 모른 척하지 않아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맬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Simultaneity 20-317, 2020. Acrylic on canvas, 22 x 27.3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전에는 왜 그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더 나은 내가 아니라 '그냥 나'일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지던 날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아이유의 음악들과 서승원 선생님의 작품들을 통해 공감받으며 잠잠해진다. 내가 그들의 작업에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 삶에 공감해주고 있었고 그 징표로 작업물들을 내놓는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고.


서승원(작가) 선생님의 작품은 늘 내 마음속에 큰 울림을 준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임을 느꼈을 땐 마치 영겁에 갇힌 듯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까지 들지만, 선생님의 단색화를 보고 있으면 영문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들숨 날숨이 훨씬 자연스러워짐을 느낀다. 열심히 그 이유를 알고자 했으나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알고자 하는 '노력'을 놓게 하는 힘이 있다.



Simultaneity 71-45, 1971. Oil on canvas, 162 x 130 cm. Courtesy of the artist & PKM Gallery


아직 답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지. 그렇지만 이제 내게 위안을 주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성취감보다, 결국 그 시끄러운 시간이 지나고 '나로 안전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이다. 그래서 요즘 '나'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중간적 결론은 이렇다.



사람은 이미 아이일 때부터 완전하다. 더 좋을 수 없는 '좋은 사람', 더 나을 수 없는 '가장 나은 사람'. 어른이 되어가며 그 빛을 잃어가지 않도록 그 과거의 한 점을 목표로 달려가는 것. 결국 그 목표점은 '어린 날의 나'라는 것.



그래서 내가 또다시 목표점을 잃고 앞만 보고 달리려 할 때, 잠시 멈추어 쉬게 하는 서승원 선생님의 작품. 그 심연에 담겨있다 숨 고르고 나면 아이유의 곡들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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