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계절에도 봄이 드나들게 해 주신 배석빈 작가님께
어.. 그럼 조카분이시죠?
내가 배석빈 작가님의 전시를 진행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배석빈, 배근아. 성씨가 같으니 으레 '가족이려나?'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 근거 있는 물음이다. 작가님께 나와 동명의 조카가 실제로 있으신 것이었다. 심지어 전시 엽서와 소개문에도 '큐레이터 배근아'라는 문구가 적혀있으니 이와 같은 질문을 하라고 부추긴 격이다.
재미있었다.
일단 작가님 자체가 호기심 많은 소년 같으셔서 재밌기도 했고, 그런 분과 소소한 이야기로 엮인다는 것도 재밌었다. 쉽지 않은 투병생활 중 살아갈 의지를 다지기 위해 예정되어 있던 전시를 그대로 밀고 나가셨다. 호리호리한 체격과 보드라운 말투를 가진 한 떨기 꽃잎 같은 분이라 생각했는데, 배석빈 작가님은 꽃 중 강인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동백'이었나 보다. 하얀 눈 속을 가장 먼저 헤집고 피어나 옹골찬 붉은빛으로 물드는 동백처럼 작가님은 아직은 썰렁한 계절을 화사하게 수놓으셨다.
전시 중에 전시장을 들르시는 날은 보통 항암치료를 받으러 강남에 나오셨다가 오시는데, 어느 날은 갤러리 벽 보수를 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말씀하셨다.
내가 선물 하나 줄까요? 오늘 바로 주는 건 아니고, 원한다면 다음번에 올 때.
네! 주세요!
아니, 뭔지 묻지도 않고?
뭐든 선생님이 주시는 거면 좋은 거 일 것 같아요.
벽 보수도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듯한 효과를 주는 도구로 하면 좀 더 섬세하게 할 수 있는데, 그 도구 하나 가져다주려고.
좋아요! 주세요!
그 후에 갤러리를 들르신 작가님 손에는 카페라테 색의 부드러운 갈색 나무 손잡이가 있는 일종의 실리콘 헤라였다. 일단 생긴 것도 귀엽고 별 것 아니지만 나만의 도구가 생긴 게 난 또 재밌었다. 그걸 가지고 또 하릴없는 이야기들을 꽃피운 하루였다.
그렇게 3주간의 배석빈 개인전을 끝내고, 메시지로 종종 안부를 여쭈었다. 전시 기간 동안 선생님의 제자라며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는데, 보통 친구나 동료들이 찾아오는 다른 작가님들과는 달리 그 아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 줄을 지었다. 그 제자들이 작가님의 전시를 그리 성실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것이 왠지 이해되었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분이 있었다. 그분은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 입시 때 실기장으로 데려다줄 사람이 없어 곤란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님이 무심한 듯 당신이 데려다주겠다고 하셨고 그 이른 시간에 직접 차로 운전해서 시험장까지 데려다주셨다고 한다. 내게도 그런 분이셨다. 배석빈 선생님은.
그렇게 6개월 정도 흘렀을까. 안부를 여쭙는 메시지의 1 표시가 사라지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항암치료 열심히 받으러 다니셨는데 혹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겠지?'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내볼까 여러 번 망설였지만, 읽히지 않은 메시지 아래로 또 하나의 읽히지 않은 메시지가 쌓이는 게 상상만 해도 힘들었다. 이미 나는 외로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이미 선생님의 빈자리를 느끼고 외로워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결혼을 했고,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야외 정원에서 파티를 하며 선생님을 떠올렸다. 선생님은 이 광경을 화폭에 옮기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읽어내셨을까. 그리워 사무치던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나란히 떠오른 얼굴이었다. 얼마 후 선생님의 부고 소식이 메시지로 날아왔다. 다행히도 내가 보낸 안부메시지 밑에 달린 글은 아니었고 메시지로 온 소식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완벽하게 내 그리움과 외로움의 대상이 되셨다. 내가 선생님의 '어떠한 대상'이 되기를 바랐는데, 선생님이 내게 그리 되셨다. 나는 지금 굉장히 잘 살고 있다. 평화롭게.
첫 봄이다.
선생님이 가시고 맞이하는.
유달리 선생님의 작품 중 한 점이 생각나는 봄이다. 인생의 길이를 생각하면 눈 깜빡할 새나 다름없는 3주라는 시간 동안 이따금씩 나눈 선생님과의 대화와, 이따금씩 맞춘 눈빛이 이렇게도 깊이 남아있다. 선생님은 진정 '예술가'이신 거다. 사람의 인생을 인생답게, 삶을 삶 답게 만들어주셨다. 오늘은 선생님의 작품 제목들을 책 읽듯 읊조려보아야겠다. 그 제목 한 문장 속에도 삶을 담으셨던 분이고, 부드럽고 평화로운 태도 안으로 병마와 싸워나가는 강인함을 가지신 분이었으니 그의 삶을 닮고 싶다. 조금이라도 닮은 모습이 깃들 때가 되면 내 얼굴도 선생님의 작품처럼 꽃 같고 화사해질까?
그때가 비로소 내 삶의 봄이 아닐까.
비전공자로 운좋게 시작해 걷고있는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갤러리스트의 길에 작은 소망이 하나 생겼다. 이렇게 자기만의 삶을 작품에 담아 숨쉬듯 작품을 하는 작가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보탤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 최소한 나 하나라도 더 듣고, 보고, 알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