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와 똑같은 취미를 갖는다는 건 축복이다!
나는 남편과 함께 자그마한 학원을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출근부터 퇴근까지 24시간을 거의 붙어 지낸다.
예전에는 이런 사이클을 가진 부부를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과는 퇴근 후에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거지, 어떻게 스물네 시간을 함께한담?'
'아무리 부부 사이여도 그렇지, 너무 갑갑하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사실에 감사한다.
우리는 함께 학원 운영 이야기를 나누고, 학원 아이들을 가르치며 겪는 기쁨과 어려움을 공유한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들을 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나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학원의 특성상 우리의 퇴근은 남들보다 서너 시간 늦다.
중고등학생 아이들과 씨름하며 머리에 쥐가 날 때쯤... 나는 어김없이 단골 매장에 전화를 건다.
그리고 밤 10시 무렵에야 퇴근.
드디어 내가 하루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이 찾아온다.
하루 동안의 스트레스를 툴툴 털어버리고 마음의 먼지를 닦아낼 우리만의 장소로 내달린다.
그곳은 바로 스크린 골프장!
나와 남편은 이곳에서 둘만의 데이트를 즐긴다.
'늦게 시작한 도둑이 새벽 다 가는 줄 모른다'던 속담도 있듯이
이제 3~4년 차 되어 가는 골린이들인 우리는 참 열심히도 다닌다.
나는 썩 잘 치는 편이 아니라서 핸디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뭐 어떠랴.
선수를 할 것도 아니고...
내게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스크린 골프를 즐긴다는 사실이다.
서로 조언도 해주고, 때로는 위로도 주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한 시간 반 가량의 그 시간이 주는 기쁨은 정말이지 너무도 소중하기만 하다.
물론 이 데이트도 가끔은 삐걱일 때가 있다.
골프가 너무 안 되는 날이면 우린 서로 자신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 짜증이 화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화산처럼 폭발해 버리기도 한다.
게다가 남편이 짜증을 내는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나의 '놀라운 학습력'에
남편은 때때로 나를 보며 반성을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아무튼 그런 날은 십중팔구 하루종일 일이 꼬이고 심기가 불편했던 날이다.
골프는 하면 할수록 '멘털 게임'이라는 걸 깨닫는다.
마음이 불편하면 골프 스윙도 엉망이 되고, 그러면 그날은 엉망진창인 마음으로 집에 가곤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날이 부쩍 줄었다.
그래봐야 속만 더 상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요샌 생크가 나도, 뒤땅을 쳐도, OB나 해저드에 빠져도,
많이 아쉽긴 하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일은 거의 없다.
자, 이제 슬슬 즐겨볼까?
본격적인 게임에 앞서 연습 스윙도 해보며 몸을 푼다.
오늘은 어떤 클럽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까 고민도 해본다.
새롭게 도전해 볼 코스와 난이도도 고른다.
향긋한 커피도 한 잔 곁들이고, 헝클어진 머리칼도 질끈 묶고 나면 게임 준비 끝!
남편의 통쾌한 티샷 소리를 들으면 속이 다 뻥 뚫린다.
나는 언제나 영원한 숙제인 비거리를 아쉬워하며 어떡하면 5m, 10m라도 더 보낼지 고민고민이다.
뱀샷과 뽕샷의 향연을 지나 '아, 이제 조금 감이 오네...' 싶으면 어느덧 게임 끝.
하루 온종일 기다려온 이 시간은 벌써 쏜살같이 온데간데없다.
이 즐거운 게임을 나는 오롯이 남편과 함께 둘이서 즐긴다.
이 방안엔 우리 둘만이 있고, 우리 둘만이 서로를 보고 있다.
우리 둘만이 서로의 샷에 감탄하고 안타까워하며, 응원하고 박수를 보낸다.
우리 단 둘만이...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그에게서 나는 내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가장 귀한 위안을 얻는다.
그런 그와 함께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취미를 가진다는 건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와 함께 골프를 즐기는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몇 년 전, 사랑하는 동생을 갑자기 잃고 가늠할 수 없는 큰 슬픔을 겪은 후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빛나는 순간인지를 온몸으로 깨닫는다.
그 이후로 나는 남편과 함께 24시간 붙어 있는 생활을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
그런 그와 함께 '같은' 취미를 나눌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엄청난 축복이다!
이 축복을 나는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부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작가님들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하나쯤
갖고 계시길...
만약 그렇다면 그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아도 다들 아실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