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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선 Feb 14. 2024

스크린 홀인원을 1년에 세 번!

얼마나 기뻤냐고요?

오늘은 먹고 자랑을 해볼까 한다. 


다른 것들도 뭐 그런 편이지만, 골프에 있어서만큼은 사실 나는 자랑할 게 거의 없다. 

일단 나는 자타공인 짤순이다. 드라이버 평균은 130m가 넘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이다. 

7번 아이언으로 90m 나가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의 골프 파트너인 남편은 나에게 종종 이렇게 위로한다.


"그래도 공이 똑바로는 가잖아. OB도 잘 안 나고, 해저드에 빠지는 일도 별로 없고..."


맞는 말이다. 

도대체 공이 멀리 나가질 않으니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질 확률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물론 필드에 나가면 이마저도 무너지고 만다.)


스윙 폼은 또 어쩔 건가. 

근사한 피니시 자세를 잡는다는 건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백스윙도 어색하고, 몸통 스윙이다 팔로 하는 스윙이다... 뭐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스윙 자세를 갖고 있다. 

남편도 이런 나의 의견에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답답한 노릇이다. 


그런데도 스크린 골프에 빠져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못 말리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매번 말하지만, 극도의 운동치인 내가 벌써 몇 년째 하루가 멀다 하고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는 걸 보면

골프란 녀석도 어지간한 녀석은 아닌 게 틀림없다. 


이런 내게 작년에 어마무시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다. 

스크린 골프에서 홀인원을 번씩이나 것이다. 

무려 세 번씩이나!!!

홀인원은 남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 작은 공을, 저어~ 멀리에 있는, 작은 홀컵에 막대기로 쳐서 쏙 넣는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 대단한 우연이 내게 세 번이나 찾아왔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뿐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결론은 한결같다.

홀인원은 정말 운이다!

소문난 짤순이에, 어설픈 스윙 자세로 어떻게 내가 원하는 거리, 원하는 장소에 정확히 

공을 떨어뜨릴 수 있겠는가?

이건 운이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나는 없다. 


세 번의 홀인원을 증명하는 증서들.


안타깝게도 나는 두 번의 홀인원에서는 큰 축하를 받지 못했다. 

나는 거의 남편과 둘이서 스크린 골프를 즐기는데, 

하필이면 내가 홀인원을 한 날마다 남편의 스코어는 최악이었던 까닭이다. 

스코어가 최악인 날의 그 기분을 나도 너무나 잘 알기에 홀인원을 하고도 축하받고 싶은 생각도 들지 못했다.

마지막 세 번째 홀인원에서야 둘이서 기분 좋은 황당함을 만끽했다. 


홀인원은 실력이 좋다고 해서 마구마구 나오는 게 아니다. 

반대로 나처럼 어설픈 골퍼에게도 뜻하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게 홀인원인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홀인원은 내게 너무 비현실적이다. 

해놓고도 믿기지가 않는다. 

정말 어쩌다 운 좋게 나오는 칩 인 버디나 15m 이상 거리의 퍼팅을 성공했을 때의 느낌이 

더 기쁜 건 그런 까닭이 아닐까? 

뭔가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과 함께 스크린 골프장 예약을 한다. 

꿈꾸기엔 너무 비현실적인 홀인원 말고, 

두근두근 버디, 콩닥콩닥 칩 인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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