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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선 Jan 15. 2024

남자친구가 날 버렸어요!

스크린 골프 최악의 날

오늘은 남자친구(현 남편)의 지나간 흉(?)을 좀 볼까 한다. 


스크린 골프를 치다 보면 참 안 되는 날이 종종 있다. 아니, 많다!

게다가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그냥 그 작은 공을, 공만큼 작은 클럽 페이스로 맞춘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저 공이 앞으로 나간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워낙 잘 못 칠 때이다 보니 욕심을 내는 게 사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좀 달랐다. 독학으로 골프를 배운 그는 근성이 있었다. 

집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스윙 연습이라고 했다. 

골프가 잘 안 되는 날이면 그는 혼자만의 씨름을 시작한다.

거울을 보며 자세를 바로 잡고,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자세 교정을 하는 것이다. 

유튜브도 많이 보며 나름의 스윙 자세를 갖기 위해 혼자서 무진 애를 썼다. 

그 시간의 수고로움과 마음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다. 


그날도 우리는 스크린 골프장을 찾았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골프 코스를 고르고, 스윙 연습도 좀 하면서 게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기운이 으스스하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내가 보기엔 아주 멋진 스윙 폼을 가진 남자친구의 샷이 마구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라이버는 쳤다 하면 OB와 해저드, 

아이언 샷은 슬라이스 아니면 심한 훅,

거기다 뒤땅, 뽕샷, 뱀샷, 탑핑, 돼지 꼬랑지, 생크의 향연,

그린 위로는 제대로 올라가지 못한 채 온탕냉탕을 거듭하기 일쑤...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최악의 플레이였다. 

나는 너무 마음이 안타까워 게임을 중간에 그만두자고 했지만, 오기가 발동한 그는 그러지도 않았다.

정말 악으로 깡으로... 어떻게 그 게임을 마쳤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분위기는 싸했다.

게임비를 치르고 밖에 나선 순간... 기막힌 사건이 벌어졌다.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던 그가 스크린 골프장 문 앞에서 날 버리고 그만 차를 몰고 휙 떠나버린 것이다. 

차가 없던 나는 어쩌라고...

밤 12시에, 시내와 떨어진 그 외진 곳에서 나는 버려졌다.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카카오택시를 불러도 오지 않았다. 

집에까지 걸어가려면 내 걸음으로 족히 40~50분은 걸릴 텐데...

그 캄캄한 밤에 나는 너무도 어이없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남편과 함께 웃으며 그때의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너무너무 미안했다고, 집에 돌아와서 많이 후회했다고 매번 사과한다. 

이젠 나도 그때 당시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 이해가 된다. 

그는 자신에 대해 엄격한 편이다. 

그런 그가 이 골프라는 녀석 때문에 얼마나 많이 속을 썩었는지 나는 너무도 잘 안다. 

그의 인생에서 정말 마음처럼 안 되는 녀석이 골프라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노력하고 땀 흘린 대가가 좀처럼 되돌아오지 않아 속상해 한 날은 또 얼마였던가.

그런 그를,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난 그 누구보다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와 남편은 그 말 안 듣는(?) 골프 녀석에 대해 토론하고, 즐기고, 괴로워할 것이다. 

정말이지 골프란, 가면 갈수록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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