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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쓴이 Dec 22. 2023

아프니까 군인이다.

장교가 되는길, 사관학교를 꿈꾸다.(3화)

동네 어른들에게 "이놈 장군감일세"라는 말을 듣곤 했다.

그때는 장군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다.

중학교에 가서야 장군이 되려면 사관학교 정규과정을 마치고 장교로 임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엔 장교가 되려면 무조건 사관학교 교육을 받아야 되는줄 알았지만, 특전사 부사관으로 입대하고 군 체계를 알기 시작하면서 장교가 되는 길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부사관을 지원하기 전까지는 오직 사관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사관학교에 갈 수 없었다.

내신과 수능을 동시에 충족해야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나의 꿈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상황을 설명했다.

이대로는 내신이 나오지 않아 사관학교에 갈 수 없으니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아들의 자퇴 결심을 받아주지 않으셨다.

시간이 흐르고 뒤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내가 했던 말로 어머니께서 많이 가슴아파 하셨다고 했다.

정치경제 과목을 담당하고 계시던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상호야.  군인이 될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체육선생님은 학군장교셨고, 교련 선생님은 학사장교였다.”

나는 순간 무엇인가에 세게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한번 틀어진 마음을 정리하기엔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관학교가 아니어도 군인이 되고 장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체육 선생님과 면담을 통해 학군사관(ROTC, Reserve Officers Taining Corps)으로 장교가 되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 3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거나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학교 옥상에서 양산 시내의 야경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에는 옥상에 누워 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달을 보며 자신의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때도 난 항상 군인이 되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날의 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질풍노도의 시기, 친구가 제일 좋았고, 열심히 공부했고, 낭만을 찾았던 추억이 있다.

이곳에는 아직 내가 잘 살아가게 도와주신 은사님이 계신다. 이 책을 빌어 은사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때 나의 자퇴 선언에 동의해 주셨으면 나는 아마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시간은 흘러 고3이 되었고, 대입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지금의 고3과는 조금 다른 생활이었지만, 우린 학교에서만 열심히 공부했다. 과외도 없었고, 고3의 스트레스를 가족이 모두 받아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직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인생의 관문이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마지막 여름 방학이라 학교 선생님들도 보충수업을 강도 높게 진행하신다고 했다. 그에 따라 친구들의 각오도 대단했다.

하지만 난 보충수업을 받지 않았다. 인생의 마지막 열공의 시기라 생각하고 친한 친구와 함께 경북 상주시에 소재한 조그마한 사찰로 들어가 한 달간 매일 15시간 이상 공부를 했다.

주지 스님께서 아침 4시에 기도 올리는 소리에 일어나 저녁 10시까지 식사 시간과 우리가 정해놓은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공부만 했다.

가끔 사찰 아래 있는 저수지에서 돌을 던지며 물수제비 놀이를 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을 주고 응원해 주었다.

그 친구는 부산대 국어국문학과에 가서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

지금은 가업을 이어받아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신이 꿈꾼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난과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수많은 갈등 속에서 꿈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부적으로 작성해야 하고, 어떠한 시련이 와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지고 지속해서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비로소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이지성의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에서 R=VD라는 말이 있다. 생생하게(Vivid), 꿈꾸면(Dream), 이루어진다(Realization)는 말이다. 성공을 시각화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럼, 시각화를 어떻게 시킬 것인가인데 나는 나의 꿈을 한 문장으로 작성하고 그것을 모니터, 현관문 등 자주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시각화), 볼 때마다 소리 내며 읽었다.

매일 생생하게 꿈을 이루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것을 통해 내가 이루었던 것들은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또 다른 책인 론다 번의 ‘시크릿’이라는 책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즉, 긍정적인 생각을 굳게 믿고 있으면 그 생각이 에너지가 되어 긍정적인 현상을 실제로 끌어당기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책들은 꿈을 이루기 위한 초보자들에게 약간은 허황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한번 실천해 보기를 권장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고등학교 때부터 실천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관학교에 가지 못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했다. 따라서 학군사관이 되지도 못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첫 관문이 대학이었지만, 나에게 군인의 길이 허락되지 않았다. 

좌절감에 재수도 생각했지만, 집안 형편상 재수를 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대학 다녔다. 

나는 매일 서생역에서 비둘기호 기차를 타고 부산에 있는 부전역에 내렸다. 

부전역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어머니와 배를 팔기 위해 자주 왔던 곳이라 낯설지는 않았다. 

1997년 당시 부산병무청이 부전역 앞에 있었다. 역에서 내려 버스 승강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병무청을 지나야 했다. 

등굣길에 병무청 게시판을 읽는 것이 나의 하루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보급률이 낮아 관공서 인터넷 홈페이지보다 게시판에 더 많은 자료가 있는 시절이었다. 게시판에 군 모집 관련 여러 자료 게시되어 있었다. 

기간은 지났지만, 나의 눈을 끄는 포스터가 있었다. 

불과 몇 달 전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육군사관학교 사관생도 모집 포스터였다. 

매일 지나가면서 그 포스터를 보며 미련이 남았다. 

그리고 현재 내가 갈 방법은 없다는 게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2년 1월 그렇게 꿈꾸었던 육군3사관학교 사관생도가 되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나의 꿈인 군인이 되는 사관학교 입학했다. 

자신이 원한다면 매 순간 잊지 말자. 잊는 순간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난 한순간도 잊지 않으려고 내 꿈을 꿈으로 꾸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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