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살아남기
다같이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이 아닌 가라오케로 알려져있는게 조금 속상하긴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간혹 노래방마다 지원하는 노래 갯수나 종류가 달라 없는 노래가 있기도 한데 이 노래방에서는 유투브가 연결되어 있어서 가사 지원은 안될지라도 유투브에서 노래를 찾아 세계 각국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각 나라의 대표곡을 번갈아 부르기도 하고, 세대나 유행에 구애받지 않는 곡을 모두 다같이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거 보면 왜 사람들이 음악이 유일하게 허락된 마약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내가 가장 친근하게 느꼈던 니클라스. 사실 이 친구와의 인연이 참 재미있다.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 언니와 함께 커먼룸에 앉아있었는데 니클라스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호스텔 커먼룸은 테이블에서 주방이 보이는 구조인데, 니클라스가 귀엽다고 한국어로 떠들고 있던 참이었다. 분명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할텐데, 요리를 마친 니클라스는 공교롭게도 우리 앞에 앉았고 그렇게 우리는 통성명을 했다.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고 나는 농담으로 북한에서 왔다고 했다. 다섯살 때 탈북을 감행했다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니클라스는 늘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가 있는데, 거기에 자기가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적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 나를 'Minyoung - from North Korea -actually From South Korea' 라고 적어놨다. 꽤나 웃겼다. 그걸 보여주면서 니클라스는 나에게 다음부터는 좀 더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만들어 그럴싸하게 만들어보라고 했다. 그 뒤로 나는 다섯살때 가짜 여권을 만들어 탈북을 감행했다는 이야기까지 아주 능청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독일에서 대학을 가지 않고 일을 시작한 니클라스는 자기성찰과 모험을 위해 호주행을 택했다고 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작은 수첩을 꺼내며 방명록을 작성해달라고 했다. 글과 그림 모두 상관 없다고. 자기가 만난 사람들에게 항상 부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한국어로 만나서 반가웠다고, 혹시 독일에 가면 놀아주나? 하는 장난스러운 문구와 태극기를 그려넣었다.
대학원 교환학생으로 시드니에 온 멜라니가 학교 크루즈파티에 초대해주었다. 드레스코드를 맞추려 급하게 마이어 백화점에서 드레스를 샀다. 마음에 드는 드레스가 마침 세일을 하고 있어서 정말 20달러라는 거저 가격에 건질 수 있었다. 덕분에 멋진 크루즈에서 식사도 하며 오페라 하우스와 달링하버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즈음에는 신나는 팝송이 나와서 다같이 댄스의 장이 열렸다. 나도 함께 따라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멕시코계 미국인 조이와 멜라니, 은서와 함께 블루마운틴에 왔다. 재작년에 호주에 있을 때 투어가이드를 끼고 한 번 온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친구들과 자유여행이었다. 버스와 트레인을 두 시간 정도 타고 에코포인트 전망대에 내렸다. 에코포인트에서는 쓰리시스터즈라고 하는 세개의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트래킹을 할지 말지 고민 하다가 조금만 내려가보기로 했다. 이 산의 이름이 녹색도 노란색도 아닌 '블루'마운틴인데는 다 이유가 있다. 푸른 바다를 연상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나는 듣고도 무슨소린가 했었다. 그런데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간 바다가 보인다고 소리쳤다. 모두들 여긴 산속인데 무슨 바다냐며 이상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나무 틈새로 펼쳐진 울창한 숲속은 마치 하늘을 담아 반사라도 하듯 정말 푸르렀고, 바다라고 착각하게 만들정도였다. 그제서야 나는 왜 이 산의 이름이 블루마운틴인지 단번에 납득할 수 있었다. 우리는 돌아서야할 타이밍을 놓치고 세시간 동안 블루마운틴을 헤맸고 정반대의 트레인역에서 겨우 기차를 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살면서 코를 곤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룸메이트가 나에게 어젯밤에 코를 골았다고 했다.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