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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그노네 Mar 26. 2024

14.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1

호주에서 살아남기

 

  시끌벅적 했던 호스텔에서의 일상을 정리하고 나도 새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모두가 떠나고 멜라니만이 남았다. 다른 워홀신분으로 온 친구들과는 다르게 대학원 교환학생으로 온 멜라니는 시드니에 머물면서 학업과 파트타임 잡을 병행했다. 까르띠에 고객서비스 파트에서 일하는 멜라니는 의도치 않게 한국인 동료들을 여럿 두었고 심지어 멜라니가 함께 쓰는 하우스 메이트 중 한 명도 한국인이었다. 멜라니는 나에게 그들을 소개시켜주었고 자연스레 함께 어울리게 되었다. 


특히 멜라니의 한국인 동료 보람언니는 호주에 이민온 시티즌으로 집과 차가 있는 꽤나 안정적인 삶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엄마나 다름 없었다. 안타깝게도 해외에서는 같은 한국인끼리 제일 믿을 게 못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하는데, 보람언니는 그 중 몇 안되는 예외였다. 보람언니는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와 함께 시간날때 마다 우리를 근교로 데려다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집에 초대해 식사대접을 해주기도 했다. 말그대로 우리의 시드니 엄마, 아빠였다. 


하루는 보람언니의 남자친구의 동민오빠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호주에 머무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중 정말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얼마 없었다고. 나는 쉽게 애착을 가지고 감정소모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게 너무 힘들었다고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연락하며 안부를 묻는 소중한 인연들이고, 갑자기 우리가 모르는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동민 오빠가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느꼈다면 7년이라는 세월동안 자기는 어땠을 것 같냐고 말이다. 지금처럼 무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졸업 후 취업을 뒤로하고 호주행을 택했으나 알게 모르게 뒤쳐져있다는 생각이 가슴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었다. 호주에서도 유치원과 한글학교 등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알아 보았던 이유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현지 로컬 카페에 일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오너와 스태프들 모두 나를 딸과 동생처럼 여겨주었고, 그만두고 나서도 놀러가서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크리마스 파티에도 초대를 받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식사자리에서 맥주 한 병을 거하게 마시고 취했고 일정을 다 소화하지도 못하고 집에 보내져버렸다. 한국에서는 술을 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에 불편함을 겪을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능력이지만 이곳에서는 아무도 술을 마시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아마 나는 이 분위기에 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그런데 중간에 집에 보내져 잠들고 일어난 뒤 깨달았다. 내 몸하나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자제능력이 없는 사람의 꼴이 얼마나 초라한지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프랑스인 룸메이트 쟌과 클레모가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멕시코 음식인 파히타를 차려주었다. 그리곤 프랑스 국민 맥주를 가져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다른 맥주들보다 눈에 띄는 사이즈였다. 맥주 치곤 꽤나 센 도수를 자랑하는 이 맥주는 프랑스인들이 즐겨마시는 맥주라고 했다. 다른 맥주들보다 도수가 높기 때문에 가성비(?)가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총 5명인데 사진에 네 명뿐인데는 이유가 있다. 쟌과 클레모는 한 방에 같이 살고 나, 미카엘, 아메이 이렇게 각 방에 산다. 같이 사는 쉐어 하우스인 만큼 클리닝 스케이줄이 있고 각자 쓰는 화장실은 각자 관리해야한다. 나는 쟌과 클레모와 같은 화장실을 쓰고 미카엘과 아메이가 같은 화장실을 쓰기 때문에 클리닝 스케줄도 팀으로 2주씩 하게 된다. 그러나 아메가 클리닝 스케줄을 잘 따르지 않아 미카엘이 혼자서 감당하기 일쑤인데다가 하지도 않은 클리닝을 했다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평소 다른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그리 평판이 좋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메이는 결국 우리와 대화로 해결하는 것 보다는 등지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인사도 받지 않고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아쉬울 것 없는 우리도 그냥 우리끼리 식사시간을 가졌다. 국적을 불문하고 기본적인 것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환영받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서로 다른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여 문제 없이 잘 산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노력조차 하지 않는 모습은 우리를 더 실망하게 만들었다. 



 이번엔 멜라니의 저녁식사 초대가 있었다. 멜라니는 베트남계 프랑스인으로 멜라니의 저녁식사에 가면 늘 베트남계 메인음식과 프랑스 디저트를 함께 맛 볼 수 있었다. 동민오빠와 보람언니까지 한식을 챙겨와 식탁을 가득 채웠다. 나는 이런 이질적이면서도 색다른 식탁을 참 좋아했다. 사실 한국문화에서 집에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것은 꽤나 큰 이벤트에 속하는 일이다. 음식 준비보다는 자신의 사생활을 오픈한다는 점에서 거리낌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 집이나 다른 친구들을 보더라도 집 상태가 손님이 보았을 때 괜찮은 상태인가 하는 것에 신경을 쓰는 느낌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집에 초대를 해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굉장히 흔하고 오픈되어 있다. 영어에는 '정'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어느나라나 비슷한 종류의 정이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내게 후덥지근하고 이국적인 크리스마스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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