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이 바라본 대한민국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치열하게 아귀다툼하는 사방에 커다란 울타리가 쳐져 있다. 이곳의 주인은 약자를 홀대하고 강자를 우대한다. 그는 차별적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으로 담장 안쪽의 모든 이를 통제하고 순종시킨다. 자유를 영위하며 사는 줄 알았던 곳이 실제로는 거대한 사육장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강명*
서구 문명 위에 굳건히 세워진 상아탑 위에서 지식이란 걸 습득하면서, 나는 세상을 더욱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사회학과 역사학의 가르침에서 인류는 퇴보하고 있었고,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분명 개선되는 부분들도 명확했다. 하지만 개선이란 잘못된 것을 고쳐 더 '좋게' 만드는 것, 여전히 세상은 잘못된 것들투성이였다. 자본주의와 인종 차별로 발현된 식민주의의 잔재와 역사를 잊은 사람들, 아니 우리는 역사 없는 사람들**이 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더라도, 직접 두 발로 마주하는 풍경은 전혀 비관적이지 않았다. 카스트 차별의 신음 속에서도 굳건히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는 인도의 친구들, 여성과 성 소수자의 권리를 내세우며 행진했던 아르헨티나의 군중들, 독일에서 마주했던 다양한 '다양성'과 '탈식민'에 대한 담론은 여전히 반짝이는 세상을 희망하게끔 해주었다.
이렇게 희망을 품고 나면 종종 '헬조선'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고는 했다. 모두가 일정 이상의 생활 수준을 누리면서, 재화와 서비스를 향유하는 이 나라가 어째서 헬조선일까. 하지만 그런 질문들은 역시 한국에 발을 디디고, 일주일이면 휘발되었다. 또 다른 나와의 싸움, 끝없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 없이 '남한'식 자아비판을 행하고 있었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거시적인 세계화의 물결에서 세계를 관조하듯 바라봤던 습관들은 사실 제삼자로서의 특권인지도 몰랐다. 20대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사는 것은 이 사회를 직접 바라보고, 경험하고, 사랑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미시적으로 바라본 대한민국의 자화상 속에서 나라는 개인은 또 다른 톱니바퀴가 되어 남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었다. 두 발로 내디딘 대한민국은 상대적 박탈감에 함몰된 사회였다.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 제3장 <민족주의와 다문화에 관하여>를 통해 우리는 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일이 년 전의 어느 날이었는데, 마침 논문을 쓰기 위해 열심히 세계화에 관한 글을 찾던 터였다. 학업을 하며 마주했던 세계화는 참 양면적이었다. 세계화는 분명 인류의 건강과 교육, 복지 향상들 다양한 방면에서 도움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 내재하여 있는 '근대화'가 품고 있는 맥락은 다분히 폭력적이었다. 흔히 제1세계의 국가들 - 다수가 식민 지배국 혹은 제국주의 국가였던 -이 옹호하는 체제는 여전히 그들 나라의 이익을 위해 설계되어 있었고, 이제 세상은 그런 고리타분하고 낡은 지배-피지배의 노예제가 아닌 세련된 자본주의로 굴러가고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제3세계의 문화는 야만적이었고, 저급했으며, 그들의 경제는 저발전 상태였다. 그들이 배워야 할 것은 제1세계의 문화! 멋진 신세계***! 고상하고 우아한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한국은 그 한 가운데 끼어 졸부의 천박한 세련됨으로 <이중의 세계화>를 추진해내고 있었다. 바로 우리가 상대적 박탈감에 도취한 이유였다.
임명묵은 '90년대생' '조치원' 출신의 시선에서 대한민국 90년대생 (앞으로 20대로 서술)이 처한 현실과 그들이 바라보는 사회, 그리고 그들이 마주했던 이중의 세계화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가 앞서 2019년에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글로 이중의 세계화에 대한 설명을 갈음해본다. '하지만 가끔 고향에 내려가서 느끼는 세계화는 전혀 달랐다. 생산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과거 4인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게 해준 제조업 일자리는 사라져 가고 있고, 그 때문인지 지방의 소읍들은 어느 곳이나 고향의 정겨움보다는 쇠락해 가는 을씨년스러움을 풍기고 있다. 대신에 번창하는 것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해외 식품점이다. 작년 추석에 고향에 내려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고향 재래시장 주변으로 골목마다 삼삼오오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장을 보고 외식을 하고 있었다. 아마 추석에는 공장도 쉬니 그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이주민들이 한꺼번에 시야에 들어온 것이리라. 예컨대 서울대의 청년들이 미국과 독일에서 친구들을 만든다면 이제 이곳의 청년들은 키르기스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온 노동자들과 밥을 먹고, 식당 아주머니들은 중국과 베트남 결혼이주민과 일을 같이 해야 한다. 이중의 세계화는 관계 맺는 국적에서부터 어느 정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선진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 또한 서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난 일을 비슷한 시간표로 같이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K를 생각한다에서 손을 뗄 수 없이 집중해서 봤던 부분은 제1장 <90년대생은 누구인가>였다. 수많은 20대 남자 담론이 활개를 치는 이 상황에서조차 그 누가 30대 이준석이 국민의 힘 대표로 선출되는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천관율이 20대 남자에 관한 책을 펴냈고, 다양한 정치 평론가들과 활동가들이 20대 남자들에 대해 코멘트를 달았지만, 사실 그들은 잘못된 답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기존의 진보-보수의 정치 역학에 20대 남자를 끼워 맞추려 하고, 이제는 철 지난 이데올로기로 그들을 정의하려 하는 것 자체가 실패였다. 사실 20대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20대에게 질문을 해야 했다. 정치적 올바름이나 안티 페미니즘에 함몰된 정치 꿈나무들 말고, 일베와 디씨, 웹툰과 웹 소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시간을 쏟고 있는 진짜 20대들 말이다.
임명묵은 그 지점에서 20대의 시선을 내부자의 시선에서 그려낸다. 그가 정의하는 20대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사회갈등이 격렬해진' 시대의 20대다. 또한 그들은 '한국의 대중문화와 콘텐츠 산업이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세계적 수준에 올라선' 시대의 20대다. 그 양면적인 현상 속에서 20대가 겪어야 했던 온라인 공간은 '투쟁적'이었고, 그것은 '사회적 압박과 반영물'로서 대중문화에 투영되었다. 그는 이 투쟁을 9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 사회 계층화 (혹은 양극화)로서 설명한다. 20대의 부모 세대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계층화와 세습화가 이루어지면서, '고도로 위계적이고 경쟁적인 한국 특유의 사회'는 20대를 '엄청난 학업 경쟁에 내몰'게 되었다. 그들에게 '학력 자본'이란 권위주의 국가의 잔재가 남아있는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계층적 지위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 풍경은 정보화의 격랑에 힘입어 소셜 네트워크와 함께, 수많은 콘텐츠와 커뮤니티로서 구현된다. 그들에게 소셜 네트워크는 ‘사회적 관계 맺기’의 한 방식이자 이 사회의 ‘인싸’가 되어 인정 경쟁에서 이기는 플랫폼이 되었다. 20대들은 소셜 네트워크에 과몰입하며 자신의 ‘경제적 여건’과 ‘매력 자본’을 타인에게 어필한다. 이는 마치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만큼이나 세습 가능한, 아니 대부분이 세습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21세기의 새로운 형태의 자본이 아닐까 싶었다. 또한 20대는 콘텐츠 공급자와 소비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전 세대의 20대들은 다수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거나 힙스터 문화와 같은 의미 없는 소비에 국한되었지만, 이제 20대는 콘텐츠 생산의 주체가 되었다. <나 혼자만 레벨업> 부류의 웹 소설과 웹툰들은 그 맥락에서 20대의 욕구를 완벽히 포착해낸다. 그들이 대리만족하고 싶은 것은 바로 ‘경쟁, 승리, 지배, 복수, 성장’으로 ‘그들이 결핍을 느끼고 있던 경험’이었던 것이다. 그 경쟁과 투쟁의 장에서 일베와 메갈리아와 같은 투쟁 공동체의 출현은 당연했던 건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두 장에서 임명묵은 90년대생으로서 본인의 삶과 경험에 입각한 대한민국을 분석한다. 이중의 세계화와 정보화의 격랑을 통한 세대 담론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 대한 분석은 그 어느 속칭 ‘20대 남자’ 전문가들도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일 터였다. 이 정의는 20대의 탈가치에 관한 경험이 선해 되어야만 가능했고, 그 이해가 있지 않고서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한 현상에 세대 끼워 맞추기가 될 뿐이었다. 나는 임명묵이 써 내려가는 이중의 세계화를 보며 내가 마주했던 필리핀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친구들을 떠올렸고, 인도의 사회학의 요람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를 나와 한국에서 버터 갈릭 난과 치킨 커리를 파는 인도 친구의 삶을 가늠할 수 있었다. 카카오와 네이버 상위권을 넘나드는 환생 형 판타지에 열광하는 독자들을 보며, 풀 데 없는 일과 연애에 대한 스트레스를 웹툰으로 푸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앞서 길게 풀어낸 1장과 3장 외에도 임명묵은 제2장 <K-방역이 말해주는 것>과 제4장 <대한민국 386의 일대기>, 그리고 제5장 <입시,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통해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다만 위 장들의 경우 이 글의 분량을 변명 삼아 언급을 미룰까 한다. 다만 그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며 던지는 386, 아니 현 586세대에 대한 질문들은 분명 새겨들을 만하다. ‘그래서 나는 586들에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다. 당신들이 청년 시절에 그토록 우려하던 불균등발전이 지금에야 이 땅에 도래했으며, 당신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수혜자 아니냐고. 만약 당신이 ‘사회주의자’로서 젊은 날의 뜨거운 심장에 충실하다면, 이 이중경제 체제하에서 진짜 약자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당신이 ‘자유주의자’로서 이 사회에서 책임 의식을 지닌 어른이라면, 공동체를 위해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유럽 바깥의 대륙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대상으로서 존재할 뿐 주체로서 존재하지 못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 바깥에 존재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스스로의 관점을 인정받지 못하는 부치었다. 에릭 울프의 유명한 책 재목인 역사 없는 사람들(People without History)은 이러한 차별적인 인식의 권력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월터 미뇰로 *****
적어도 20대, 아니 90년대생의 역사는 90년대생에게 쓰게 양보하는 게 맞지 않을까. 임명묵의 K를 생각한다를 통해 90년대생이 꿈꿨을 대한민국을 상상해본다. 나 또한, 일베와 오유로 갈린 친구들의 정치관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을 보며 더 나은 미래를 소망했고, 나의 ‘제3세계’ 친구들에 밝게 인사를 건네던 내 (인종차별주의자인 줄 알았던) 한국 친구들에게 희망을 품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그저 이 시대를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위와 아래로 나누어진 K는, 언제든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우리 자신이었다.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 에릭 울프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구별짓기>, 피에르 부르디외
*****<라틴 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월터 미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