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가 누군지 몰랐다.
초록색 검색창을 켰다. 입력했다.
"축구선수 그라니트 자카"
...
두번째 비행이었다. 정말 햇햇햇병아리 주니어 크루. 우리 회사에서 2번째 비행까지가 교육비행이었다. 돈 안나오는 비행. 두번째 비행도 첫번째 비행과 다를 게 없었다. 이번에도 실수만 하지말자고 다짐했다.
출근 길은 언제나 떨린다. 특히 브리핑 룸으로 가는 길. 다들 처음 보기도 하고 오늘은 어떤 크루들과 일을 할까 궁금한 마음, 그리고 답을 못하면 비행을 못하는 브리핑 퀘스쳔. 비행 하기 전, 회사에서 항상 적어야 하는 시트지가 있다. 거기엔 그날의 메뉴와 가는 나라의 특이사항 등 모든 것을 적는다. 정말 빼곡하게 적어갔다. 옆에서 내가 적어온 종이를 본 남자 크루가 피식 웃었다.
'짜식~ 그렇게까지 적을 필요는 없는데 신입은 신입이네.' 유쾌한 피식이었다.
첫번째 비행과 똑같이 봉지커피를 준비했다. 그리고 위에 이름을 다 적어붙였다. 내 열정은 대단했다. 비행 공부하기도 벅찬데 기장, 부기장, 부사무장 그리고 크루들까지 모두 이름을 따로 적어서 예쁘게 오려 봉지 커피 위에 하나씩 유리테이프로 붙였다. 딱 교육비행 때까지만 이렇게 준비하자고 생각했다. 혹시 실수라도 할까 귀여운 뇌물로 둔갑한, 실은 내 두려운 마음이었다. 그리고 뭐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마음이 닿았을까? 모두가 두번째 비행인 막내라고 우쭈쭈 해줬다. 비행기 기종이 다 다르기 때문에 처음엔 뭐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이 헷갈린다. 귀찮을 법도 한데 이때 정말 잘 가르쳐주고 챙겨줬었다.
교육비행을 '옵저버 비행'이라고 한다. 브리핑 룸에서 피식 웃었던 그 크루가 나를 '옵저버, 옵저버' 라고 불렀다. 굉장히 유쾌한 친구였다. 일도 어쩜 그렇게 야무지게 신나게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흥얼거리며 그 무거운 걸 가볍게 꺼내서 척척 넣고 정리도 차곡차곡 곧잘했다. 그리고 배고프다며 과자까지 꺼내서 먹는 저 여유. 나는 언제 저 지경까지 될까 싶었다.
두번째 비행은 아부다비로 갔다가 바로 돌아오는 턴비행이었다. 손님들 다 하기시키고, 다시 돌아오는 비행에서 상당히 오래 걸렸다. 원래 출발 시간보다 꽤 지연이 됐다. 나는 두번째 비행을 하는 신입이지 않던가! 필리핀 부사무장님이 자주 부르며 이것 저것 질문을 했다. 출발 전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사이에 뒤로 운동복을 입은 단체 손님들이 우르르~ 타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순식간에 비행기 좌석은 덩치좋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알고보니 '축구선수들'이었다. 원래 계획이 없었는데 타게 되어 지연된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운이 좋았다. 때마침 입사해 타이밍 좋게 트레이닝을 마치고, 월드컵 시즌에 비행을 시작했던 거였다. 월드컵을 기다렸긴 했지만, 평소에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리고 나는 사실 그런걸 즐길 여유가 없었다. 실수만 하지말자. 부사무장님의 지시와 크루들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진땀을 뺐다. 짧은 비행이라 빠르게 서비스를 마쳐야해서 더 분주했다. 그 피식 웃었던 크루가 일을 잘해도 너무 잘해서 내가 '갤리천재'(보통 경력이 있는 크루에게 갤리 포지션을 준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친구 덕분에 해야할 일을 모두 끝냈다. 나는 엄지척을 날리며 박수를 쳤다. 우리 모두 갤리(비행기 안의 주방, 부엌)에 서서 아주 잠깐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커튼을 탁- 치는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운동복을 입은 한 남자>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니 신나게 찍어댔다. 이 친구가 커튼을 쳤던 이유는 회사 규정 상, 사진을 찍으면 안됐기 때문에 부사무장님 모르게 찍으려고 커튼을 빠르게 친 것이다. 일도 잘하는데 이런 잔머리까지! 손도 빠르고 눈치도 빠른 친구였다. 나이스!
아니 뭐야? 나는 바로 직감했다. 이거 예사롭지 않다. 저 사람 누군지 모르겠지만 나도 찍자. 안찍으면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몇초 사이 내가 2번째 비행인 걸 잊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처음보는 크루들이었지만 모두 한마음 한뜻이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두 공범자가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추억이 된 순간이었다. (사내 리포트 문화가 있어 회사에 보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기에 누구든지 행동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갤리천재 크루에게 나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더니 다른 크루들도 다 한명씩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갤리 천재 크루는 사진 찍어주느라 바빠보였다. 다른 크루에게 물었다.
"저 사람 누구야?"
"(웃으며) 나도 몰라."
우리는 꺄르르 웃었다.
비행을 마치고 이 갤리천재 크루는 나에게 사진을 보내줬다. 그리고 말했다.
"옵저버! 너 2번째 비행에 이런 일 있는 거 진짜 럭키 중에 럭키야."
이때 당시 회사 크루 버스에서도 폰 사용 금지였기 때문에 나는 이 축구선수의 이름만 알아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검색했다. 그리고 축구를 잘 아는 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축구선수 그라니트 자카" 였다.
"와..."
할말을 잃었었다. 그렇다. 직감이 맞았다. 나는 자카가 누군지 몰랐다. 친구가 그때 당시 그는 몸값이 대단한 인기있는 축구선수라고 했다. 친구가 나를 부러워했다. 정말 소오름이었다. 갤리천재 크루에게 너무 고마웠다.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했던 나 자신 칭찬해. 그렇게 겨우 2번째 비행에서 세계적인 선수와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그리고 몇 초의 찰나의 순간을 잡은 그 사진은 평생 간직 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 그 많은 항공사 중에 우리 회사. 그 많은 비행기 중에 내가 탄 비행기. 그것도 겨우 2번째 비행. 알 수 없는 재밌는 인생. 입사한 타이밍. 마침 비행을 시작한 이때의 나이스 타이밍. 정신없던 와중에도 세계적인 선수들 한명 한명 얼굴보며 서비스했던 이 순간을 기억하자 생각했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했던 이 직업에 대한 보상을 이렇게 받는구나. 모든 것이 이렇게 되려고 했구나.
오랜시간 준비해서 여기까지 온 나의 피, 땀, 눈물.
경험이라는 선물을 이렇게 빠르게 받은 것 같아 감사했다. 어쩌면 주변 친구들이 말한 이 말이 맞는 듯 했다.
"Qatar loves her."
매순간 한국이 그리워, 부모님이 보고싶어, 매일을 눈물로 지새운 타지생활.
사막만큼이나 건조하게 굳은 내 마음을, 카타르가 아주 천천히 녹여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