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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PKU Feb 10. 2024

슬기로운 욕 생활을 위하여

어른을 위한 욕 대신 말

'성난 사람들(BEEF)' ⓒNETFLIX


책상에 깔아 놓은 밀린 업무와 따가운 팀원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김 차장은 아들의 감기 핑계를 댔다. 주차장에 빼곡한 차들 틈을 우아하게 빠져나와 주말에는 기필코 출근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도로에 몸을 맡긴다. 슬램덩크 멤버들이 대시보드에 나란히 앉아 짜릿한 칼퇴의 순간을 기꺼이 함께 하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슈베르트 송어 5악장의 간드러지는 선율이 흘러나온다.


김 차장의 차안은 정갈하진 않았다. 그러나 서류 몇 뭉치와 마시다 남은 라떼의 잔해만 치우면 내일 가족들을 태우고 농구장에 갈 정도는 되니 부담 없다. 저 멀리서 어슴푸레 넘어가는 해가 자줏빛 파스텔을 흩뿌리고 있는, 모든 것이 평화롭던 그 순간. 별안간 방향지시등도 없이 ‘어거지로’ 끼어드는 옆 차는 기어코 꼭꼭 눌러놓고 담아두었던 울분을, 저주를, 거침없이 터뜨리게 만든다.


“야! 이 미친 새끼! 눈알을 뽑아서 창밖으로 던져버릴까 보다! 가다 뒤져버려라!”


급브레이크 탓에 몸도 마음도 덜컥 도로에 섰다. 거친 육아와 불안한 가정의 운영과 나를 지켜보는 팀원들의 미래를 끌고 억지로 전진하는 김 차장의 뒤로 줄줄이 급정거한 차들도 불만이 생긴 것일까. 각양각색의 경적 소리와 들릴 듯 말 듯, 그러나 이심전심으로 느껴지는 욕설이 귀를 간지럽힌다. 나이스하게 비상등에 손을 갖다 대고 다시 출발하려는 그때.


“띵동, 이벤트 녹화가 저장되었습니다.”


그래. 김 차장의 저 네모반듯한 블랙박스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렌즈는 앞만 보고 있지만, 뒤에 앉은 그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터져나온 욕설은 갈 곳을 잃고 차안을 메아리치다 결국 저 블랙박스가 꿀꺽 삼켰다.




시시때때로 감정이 변하는 우리네 일상에서 그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얼굴 표정일 것이다. 고수급으로 표정 관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화나면 구겨지고, 좋으면 펴지는 것이 얼굴이다. 그나마 얼굴은 닦고, 바르고, 주무르면서 관리하면 그 노력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말은 내뱉는 즉시 휘발되어 버린다. 그래서 제 말에 가시가 돋치면 주변 사람들은 불편해지고, 말이 온화하면 주변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감화된다.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을 담보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사고를 피하느라 폭발해 버린 우리 김 차장은 어떤 케이스일까? 평소 그 혹은 그녀는 팀원들로부터 까다롭지만 회식 때는 화끈하게 소맥을 마는, 그래서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또 놀 줄 아는 직장 상사의 모범일 수도 있다. 똑 부러지는 일처리는 또 어떤가? 후배들이 뒷말을 할지언정 그 앞에서 밉보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인지 그녀일지 모르는 김 차장도, 우리도 못돼먹은 욕쟁이는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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