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받으면 다 빚이다. / 엄마, 제가 잘 갚아 볼게요.
독립적인 사람이라면 상대가 도움을 줄 때 감사히 받을 줄 알고,
누군가 내가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빚을 지면 갚으면 된다. 빚을 잘 갚으면 그 관계는 빛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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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살이가 언제 가장 힘들었냐고 물으면 망설임 없이 이사 때라 답한다. 매 학기 기숙사부터 졸업 후 월·전세 계약기간마다 자취방을 옮겼으니 이사 다닌 동네가 제법 된다. 신촌에서 송파까지... 강북과 강남을 오간 부산 소녀의 좌충우돌 이사 분투기가 동네 곳곳에 묻어 있다.
사회초년생 때의 일이다. 퇴근하고 이삿짐을 나르는 일정이었는데, 전 집주인이 보증금을 내일 돌려준다는 것이다. 새로 들어갈 집에 보증금을 줘야지 짐을 옮길 수가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통화를 들은 직장 상사가 얼마가 필요하냐고 했다. 마침 오백만 원이 있으니 얼른 입금하고 퇴근도 하랬다. 비가 오는 저녁이었다. 문제가 해결됐는데도 뭐가 그리 서럽던지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 하늘도 울고 나도 울었다.
다른 이사 날이었다. 아침 일찍 정신없이 움직이는데, 지나던 오토바이가 멈추더니 이사가는 건지 온 건지 물었다. 이사를 왔다고 하니, 오늘 신고받은 것이 없다며 도시가스 전입신고를 했는지 물었다. 도시가스 점검원이었다. 어리둥절한 내 표정을 본 아저씨는 TV, 인터넷 이전도 안 했겠다며 신고할 내용들을 알려줬다. 물론 가스 신고도 현장에서 바로 처리해 줬다. 서울에선 눈 뜨고 코 베여간다더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사 때면 늘 친구들이 함께했다. 다들 지방에서 온 터라 품앗이처럼 돌아가며 거들었다. 생각해 보니 부산에서 동생이 도와주러 온 적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이래저래 신세를 많이 지고 살았다. 지금의 서울살이가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여전히 이사는 고달프지만, 이젠 실수 없이 척척 해낸다. 보증금은 은행의 힘을 빌려 먼저 준비해 둔다. 가스 신고는 물론 폐기물 처리까지 사전접수는 기본이다. 더 이상 친구들을 부르지 않았다. 이삿짐센터를 예약했다. 다 같이 고생하고 짜장면을 먹는 낭만은 사라졌지만, 대신 몸이 편해졌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신세를 지면 그게 다 빚이라고. 그렇게 자란 탓일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마냥 감사하기보다는 미안하고 불편했다. 사실 받는 것이 서투니 주는 일도 어려웠다. 성의를 어떻게 표현해야 상대 마음에 들지 고민되었다. 이런저런 계산을 하느니 애초에 도움을 받지 않는 게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내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려 했다. 부탁하고 신세 지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거절당하는 순간이 민망하기도 했다.
전시 준비할 때도 그랬다. 대망의 첫 번째 개인전을 준비할 당시 오롯이 내 힘으로 해내고 싶었다. 친한 디자이너들을 두고 어설픈 포토샵 실력으로 포스터와 엽서를 직접 만들었다. 그 와중에 본 건 있어서 미술관처럼 작가 노트를 벽에 장식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디자인팀이 시트지 작업하는 걸 어깨너머로 봤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주말에 연락하기가 미안해 그냥 검색해 보고 알아서 주문했다. 주변을 귀찮게 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내가 제법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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