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영성 - 이현주 감리교 목사
우선 이 사람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이 예의겠지? 이렇게 말을 존댓말 아닌 “하오-투”로 하는 것부터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설명을 해야겠네.
우리나라 말이 참 재미있는 게 두 사람이 사용하는 말투로 그 관계를 짐작할 수 있거든. 누가 누구에게 반말을 하면 상대가 자기보다 낮은 사람인 거고 존댓말을 하면 상대가 자기보다 높은 사람인 거라. 그런데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중간치 말을 쓰면 둘이 같은 레벨이어서 누가 높고 누가 낮은 건 아니어도 앞이 있고 뒤가 있는 사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이 사람이 자네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건 결코 아니지만 나름 선배인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시방 이런 말투를 쓰는 걸세. 그러니까 자네들을 위에서 내려다보자는 건 천만에 아니고 다만 같은 길을 먼저 가는 선배로서 나중에 오는 후배들과 무슨 얘기를 나눠보자는 거라, 그래서 이런 어중간 말투를 쓰고 있는 것이네. 양해 바람.
이 사람은 1944년 이 나라가 일본제국 손아귀에서 풀려나기 바로 전해에 태어난 사람일세. 올해가 2023년이니 여태 팔십 년 세월을 안 죽고 살아온 셈이지. 우리 외갓집이 당시 형편으로 좀 있는 집안이라 외할아버지가 산모인 당신 딸 먹이려고 멀리 동해안까지 며칠을 걸어가서 많은 돈을 주고 미역 한 줄기 구해 오셨다더군. 요즘 같으면 클릭 한 번으로 득달같이 문간에 미역이 배달될 텐데, 그때는 그랬어.
구질구질한 옛날 얘기 젊은이들이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 사람도 알고 있네. 뭐 가난했던 시절의 얘기를 새삼 끄집어내서 누구 주눅 들게 하자는 건 아니고 그저 시대가 참 많이 그것도 초고속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뿐일세. 그리고 이건 매우 중요한 사실이네. 시절의 변화란 게 누구 혼자서 해내는 것이 아닌 까닭에 아무도 거역할 수 없고 거기에 발맞추지 않으면 별 수 없이 뒤떨어지게 되어있거든. 하기는 뭐 시대에 좀 뒤떨어진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도 없긴 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삼십육 세에 돌아가셨는데 그 해가 1956년이니 육십여 년 전 일이네. 그 아버지가 오늘 세상에 오신다면 틀림없이 이러실 걸세. “음, 동학에서 천지개벽이 있을 거라고 하더니 벌써 이루어졌구나. 어떻게 사람이 아침에 홍콩 갔다가 저녁에 오고 백 리 바깥에서 안방에 군불을 땐단 말이냐?” 자네들 군불이란 말 혹시 모를 것 같아 설명하면 아궁이에 불을 때어서 방을 미리 덥히는 걸 군불 땐다고 하는 거야. 아궁이에 불을 땐다는 것도 자네들한테는 옛날도 아주 옛날 호랑이 담배 태우던 시절 얘기겠지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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