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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나무 Dec 22. 2023

국제뉴스가 현실이 되는 날

"나도 군인이었어. 24개월 동안."

2023년 10월 말이었다.


10월 7일에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습격했다. 이스라엘은 즉시 보복했고, 양쪽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 몇 주가 지나도 전쟁은 끝날 줄을 몰랐다. 어느 병원의 폭격이 이스라엘의 소행이 맞니 아니니, 외신은 쉴새없이 떠들썩했다.


내가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유학을 하는 만큼, 아예 모르고 살 수는 없었다. 이 나라의 유대인 인구는 29만명, 아랍인 인구는 35만명. 전쟁이 발발한 바로 다음 날부터 쌍방으로 학생 시위가 있었고, 나보다 겁이 없는 학우들은 한쪽 편을 지지해야만 한다고 장광설을 놀리기도 했다.


나야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나는 대학생이고, 내일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가 훨씬 더 급급했으니까. 객지에 와서 정치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전공이 중동학인 만큼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학도인 나에게는 연도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분쟁 회피형인 내 성격에는 논란거리가 많을수록 내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책가방을 맨 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지나가면서도, 나는 다음날 토요일에 잡힌 약속만 생각했다.


1학년 때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가지도 못했다. 그 다음은 18개월의 군복무였다. 그렇게 2학년 복학생으로서 영국에 도착하니, 아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친구를 사귀는 게 급선무였지만, 외국인과 가까워지기는 마음처럼 녹록치 않았다. 솔직히 외로웠다.


그런 만큼, 어느 외국어 강의 때 내 옆에 앉은 4학년 영국 여학생이 토요일에 만나서 외국어 회화를 연습해보자는 말은 그보다 희소식일 수가 없었다. 사심도 아니었다. 그저 약속이 잡혔다는 게 들떴다.

우리는 오후 1시에 만났다. 날씨는 싸늘했고 하늘은 영국 답게 우중충했다. 처음에는 만난 이유를 기억하고 아직 서툰 외국어로 자기 소개를 했지만, 걷다 보니 영어로 갈아타고 말았다. 어언 그냥 수다를 떠는 산책이 되어버렸다.


"휴학은 어쩌다가 하게 된 거야?"


"한국은 징병제라서 18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돼."


"그렇구나. 군대는 어땠어?"


나는 부대에서 있었던 여러 황당한 일 중 하나를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그 선배는 작게 웃다가 대답했다.


"나도 군대 다녀왔는데."


"응??"


선배는 자기가 영국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라를 착각할 정도로 기억력이 안 좋을 줄은 몰랐는데.


"응. 이스라엘 군대."

하마스에게 나포된 이스라엘 노년층 인질들의 사진

이스라엘 군대.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아, 영국 사람인 줄 알았어. 미안."


"아냐. 너한테 영국 사람이라 그랬어. 영국에 사니까 영국 사람이지. 그런데 태어나기는 예루살렘에서 태어났거든."


내가 말을 주저하는 동안, 선배는 덧붙였다.


"가자 지구 국경지대에서 2년 동안 복무했어."


온갖 뉴스 기사가 새로운 빛깔로 내 눈앞을 스쳤다. 화면으로 얼핏 본 피투성이의 시신들. 나 같은 사람이, 나처럼 식견이 없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잘 몰랐다. 결국 가장 상투적인 대답을 하고 말았다.


"혹시...... 괜찮아?"


"응. 친구들 몇 명이 지금 가자 쪽에서 복무 중이기는 한데...... 안전해야지."


그리고 우리는 별 말 없이 다소 황량한 들판을 걸었다. 나는 무슨 주제로 돌리는 게 좋을지 고민 중이었다. 하지만 그 선배가 먼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다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아무도 서로 안 죽이고. 팔레스타인도 이스라엘 사람들 안 죽이고,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사람들 안 죽였으면 좋겠어."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당장 한국에서 헤드라인 하나만 보고 온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들으니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치......."


"사실, 내가 군대에 있으면서 아랍어를 배워야겠다고 느꼈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고 싶어서.... 아, 그런데 한국 사람들도 K-POP 많이 봐?"


그녀는 자연스레 주제를 틀었고, 더 이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초면의 만남에 나올 법한 그런 일상적인 소재들로 돌아갔다. 예컨대,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너는 형제자매 있어?"


"응. 누나 한 명. 24살이야."


"오오. 최고의 나이시네."


"왜?"


"나도 24살이거든."


4학년 선배라도, 나는 군대를 다녀왔으니 동갑일 줄 알았는데. 그런데 선배도 군대를 다녀왔으면 이 정도 터울이 나는 게 맞구나. 왠지 모르게 약간 애틋했다.


헤어지기 직전에 그녀는 아무 감정 없이 덤덤히 말했다. 마치 뉴스 기사를 읽는 것처럼, 아니면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전시회라도 알려준다는 듯이.


"참, 오늘도 킹스 스트리트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 하고 있대. 아마 너희 기숙사 가는 길에 보일 걸?"


그 누나의 목소리에 조금의 감정이라도 실렸더라면, 이 말을 나에게 해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다음 강의 때 보자고 하면서, 우리는 케임 강 다리 위에서 인사했다.


선배 말이 맞았다. 혼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역시나 케임브리지의 거리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깃발이 휘날리는 중이었다.


그 날 오후는 지나치지 못해서 잠시 지켜봤다.


펄럭거리는 사색기를 보며 생각했다. 나와 아무 상관 없을 줄 알았던 국제뉴스가, 항상 TV나 노트북 화면으로만 접할 것 같던 사건들이, 오늘 작게나마 내 삶을 스쳐지나갔다고. 그러니 뉴스를 보면 기억해야겠다고. 저 사람들도 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거리에 놓인 팔레스타인 사망자 명단. 괄호 안에는 나이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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