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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나무 Dec 23. 2023

내 몸은 집에 있지만...

호스로우(1253~1325년), 서정시 1110번

내 몸은 집에 있지만

내 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

내 마음은 너와 있지만

내 시(詩)는 다른 곳에 있다.


너를 잊으려 화원을 산보하니

모두 향연을 열고 있으나

이 꽃들은 지금 여기에 있고

내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


네 집이 있는 골목길에는

낙원의 실바람이 불어온다.

하늘은 저기 위에 있고

천국은 다른 곳에 있다.


누군가 네 주소를 묻기에

질투심이 나고 말았다.

네가 사는 곳은 여기겠지만

알려준 데는 다른 곳에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다시는 내게 말하지 마라.

네가 지닌 그 깨끗함은

남과는 다른 곳에 있다.


후스라우가 아직 살아 있다고

네가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몸은 여기에 있고

내 영혼은 다른 곳에 있다.




페르시아어 원문. 본 번역은 의역입니다.




이 시의 형식은 가잘(غزل ghazal), 즉 서정시다.


가잘 시는 주로 짝사랑을 다루고, 적게는 5개에서 많게는 15개의 연(بیت beyt)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연은 그 자체만으로 주제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연과 연을 잇는 논리의 흐름은 지양한다. 연의 순서가 뒤섞여도 시로서 아름다워야 훌륭한 가잘이다.


가잘 시의 모든 연은 같은 라임으로 마감하며, 일종의 후렴(ردیف radif)으로 주제를 함축하는 단어나 문구 하나가 잇따라 반복되기도 한다. 이 시의 경우, 모든 연을 끝맽는 후렴은 به جای دگر "다른 곳에 있다"가 된다.


가잘 시의 마지막 연은 항상 시인 본인의 이름이 언급된다. 저작권이 없던 시절, 이는 경쟁자들이 남의 시를 도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종의 서명 역할을 했다. 이 시의 저자는 아미르 호스로우(1253~1325년)로, 1300년대 초반 인도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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