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이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습니다. 아기였을 때부터 꽤나 열심히 시도했던 '수면 교육'이 무색하게 아이의 인생에서 스르르, 까무룩 잠드는 밤은 매우 드물었어요. 아이는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방법들을 다아 시도해 봅니다. 어스름한 무렵 느긋하게 목욕도 해 보고, 따끈하게 데운 차도 마셔 보고, 일찍 잠자리에 누워도 보고, 자장가도 들어 보고, 차분하게 책도 읽어 보아요. 그래도 여전히 쉽게 찾아오지 않는 잠, 홀로 마주하는 밤이 아이는 버겁고 외롭다고 합니다. 엄마도 아빠도 감자도 모두 먼저 잠들어 버린 깊은 밤, 아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말갛게 버티고 버티다 못내 서러워 눈물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낮의 아이'는 부쩍 혼자 방에 들어가 쓱 문을 닫으며 '방해 금지' 사인을 보내는 일이 늘었습니다. 볼 일이 있어서 똑똑~문을 두드리고 들어선 엄마에게 도끼눈을 뜨기도 하고요. 무얼 하나 궁금해서 슬쩍 곁눈질해 보면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언니들 마냥' 음악도 듣고, 좋아하는 책도 보고, 자기 자손들(아이가 자식 삼은 곤충들 덕분에 전 증손주까지 보았어요)도 챙기고, 눈이 빠져라 스도쿠도 하고,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진지하게 검색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을 자유롭게 만끽한 듯한 아이는 희한하게도 해가 질 무렵이면 영락없이 슬금슬금 붙으며 '밤의 아이'로 변신합니다. '밤의 아이'는 '엄마가 먼저 잠들지 않는 밤'이 좋다고 해요. 눈을 꼭 감고는, 자신의 옆에 팔을 괴고 모로 누운 엄마를 어렴풋이 느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드는 밤이 포근하다고 합니다. 낮에 열 일 한 휴대폰을 밤이면 충전기에 연결하듯, 자신의 하루를 열심히 꾸리고 온 아이가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기 전 엄마와의 대화로 마음의 에너지를 충전하는가 여겨봅니다.
딸은 밤이 오면 그렇게, 엄마에게 수많은 이야기들을 꺼내 놓습니다. 새로 마음에 들어온 친구 이야기, 누군가가 미웠던 이야기, 오늘 스치고 지나간 작은 생각들, 걱정되는 내일의 일들, 아직 잊히지 않는 오래전 기억들, 크고 작은 마음의 짐들 등등... 10년 남짓한 인생 경험으로는 아직 어찌 다루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이런저런 고민거리들을 털어놓아요. 코를 드르렁 골며 잠에 곯아떨어지기 전까지, 그런 아이를 온 맘으로 끌어안아 봅니다. 그리고 어쩜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을, 또 다른 아이를 떠올립니다. 그 아이는 내 딸의 말을 들으며 맞아 맞아 맞장구치기도 하고, 알쏭달쏭해하기도 하고, 짜르르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대답할까 귀 기울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딸과 내가 나누는 이야기들은 어쩜 내 안의 아이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 아직 세상이 두려운 작은 나에게 어른이 된 내가 전하고픈 응원, 위로, 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때로 깊은 밤이면, 난 짐짓 다 큰 어른인 체하며 털어놓을 맘 속 이야기가 가득한 작은 이들을 만납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다, 재잘거리다, 시무룩했다, 흥분했다, 근심했다, 안도했다 하며 소중한 나의 작은 사람들을 그렇게, 오래도록 꼬옥 안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