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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ong Kwon Nov 11. 2024

적당한 사람

문득 중학교 1학년때 국어선생님과 면담을 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표독스럽기로 소문난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는 꽤 온화하게 대해주셨다. “넌 글도 잘 쓰고 머리도 좋은 것 같은데 왜 공부를 하지 않니. 내가 방과 후에 조금 봐줄 테니까 시간 되면 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이런 내용으로 말하셨던 것 같다.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난 학교 밖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다. 사실 학교 수업도 딱히 경청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부가 싫었다기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재밌고 좋았었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험을 치면 꼭 100점은 맞았고, 성적이 낮은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중학교로 넘어가고 성적이 쭉쭉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고 싶지도 않았고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중학교는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밌었다. 그러다가 유학이 결정이 났다. 


국제학교를 처음 다니기 시작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예습 복습에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주말에 공부도 하는데, 나도 1년 뒤에는 저렇게 될까? 하다못해 12학년 입시 원서 쓰기 몇 달 남겨놓고서는 공부를 할까?

그렇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고 12학년때 잠깐 열심히 하긴 했지만 벼락치기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었다. 그래도 몇몇 과목에서는 정말 높은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수학이랑 과학 점수는 정말 발전이 없었다. 사실 높은 점수를 받더라도 크게 감흥이 없었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과론적으로 보면 딱 평균 정도 하는 사람이었지만 노력의 양으로는 최하위권 수준이었다. 

나는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 적당한 성적을 받고 적당한 대학에 진학했다. 


이렇게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 걸까?


어쩌면 나는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일 후회되는 시점은 중학교 시절이다. 첫 단추를 잘못 잠가버렸다. 본격적인 학업 경쟁이 시작되던 시기에 공부하는 습관을 배웠을지도 모르고, 노는 맛을 좀 늦게 알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비범한 놈인 줄 알았는데, 오늘 막상 생각해 보니까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욕심 더 넘어서 욕구라는 감정이 결여된 인간인 것 같다. 남에게 특별히 인정받고 싶지도 않고 스포츠카를 타고 싶지도 않다. 적당히 살 수 있는 하늘만 내어준다면 군말없이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직도 내가 뭐 하는 놈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지나온 삶을 후회하고 있는가? 

격하게 후회한다. 지난 나날들에 적응한 내가 이런 마음가짐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격하게 후회한다. 


그 중학생 때 내가 어느새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교 3학년이 되었고, 그날 국어선생님으로부터 도망친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고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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