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by 언덕 위의 건축가

김해(金海) 덕산(德山)의 음성나환자촌 언덕 위에 우뚝 선 두 채의 교회에서는, 저녁 식사시간을 약간 비켜 선 황혼 무렵 그 비단자락처럼 늘어진 산기슭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녹음된 만종(晩鐘) 소리를 흘려보냅니다.

그 테이프를 얼마나 오래 틀었는지, 쉬어빠진 김치냄새처럼 고약하게 늘어진 금속음을 우리는 그 장엄한 시간마다 들어야 합니다.


흉한 외상은 없지만 그 이상으로 비참하게 문드러진 마을 사람들의 가슴속과 그들의 일상 위에 우뚝 선 그 백색 건물들의 도도한 첨탑은, 내게 묘한 분개심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이미 멸망한 천상(天上)의 나라에 충성을 다투려고 지상(地上)의 나라를 배반하는 자들.


낙동강 철교를 걸어서 건너 일반 중학교를 다니는 이 마을의 여자애들은 유달리 얼굴이 예쁩니다.

그 예쁨에 이유가 있다는 말을 듣고선 그 아이들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힘듭니다.

미안함 때문에 그 이유를 쓰지 못하는 대신, 노지 생활 덕에 감기라도 오면 그들의 집집마다 배급된 약을 얻어먹고 금세 나아버린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들은 주로 닭을 키워 생계를 꾸리고, 그 닭들은 주로 우리 군인들이 구매해 줍니다.


산기슭이 낙동강과 만나는 강변에서 한 달째 야영 중입니다.

강은 늘 조용히 흘러내려가고, 그 너머에 양산(梁山) 물금(勿禁)의 너른 벌판이 한가롭게 펼쳐져 있습니다.

강은 넓은 영남의 땅을 적시고 오느라 흙의 색이 되었고, 벌판은 보리싹이 돋았는지 강의 색이 되었습니다.


그곳도 편안하신지.


며칠 내내 고사리장마가 계속되더니, 방금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구름이 걷힌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빗속에 네 잎 클로버가 눈에 띄길래 가져왔습니다.

혹시 감당치 못할 행운이 넘치시거든 교환하는 조건으로, 혹여 행운이 부족하시다면 내 몫을 나눠드리는 뜻으로 함께 보내오니 웃으면서 받으시길.


모년 모월 모일

낙동강 하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