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라기공원을 책으로 읽으면 생기는 일(3)

두 스승

by 언덕 위의 건축가

'설마 이런 것을 겨우 변방의 대학원생인 내가 처음으로 생각해 냈겠어?'라는 의심은 당연한 것이었고, 나는 서점과 국립도서관의 책들 그리고 국회도서관의 논문들을 모두 뒤져봤다.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검색은 다했던 것 같다.

유사한 논문조차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속했던 연구실에서 석사 논문으로 쓰는 주제는 보통 이런 것들이었다.

'건축공간 구성에 나타난 공간역동성에 관한 연구'

'건축공간 구성에서 보이는 지각적 대비효과에 관한 연구'

가끔은 'PA Award 수상작 작품 분석'같은 주제도 있었다.

그런 공부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부족한 주제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한다든지 군대를 단기장교로 다녀온다든지 또는 '어느 연구실 출신'이라는 학연을 얻는다든지 하는 부수적인 목적으로 학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군대도 다녀왔고 나름 재미있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온 이유는, 평생 직업이 된 건축에 대해서 다시 한번 치열하게 공부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가 쓰고 있던 의장론 책의 한 꼭지에 대한 기초자료를 정리하는 것으로는 그 치열함을 맛볼 수가 없었다.

'해체주의 건축에 대한 양자역학적 해석에 관한 연구'

이것이 내가 지도교수에게 제출한 논문 주제였다. 며칠 동안 끙끙대며 두 페이지 정도 분량의 연구 취지를 작성해 함께 제출했다.


당시 내가 듣던 수업 중에는 대학원 수업만 강의하시던 한 교수님의 수업이 있었다.

그는 유학경력도 없이 겨우 학사학위만을 지닌 채, 나름 유수의 대학이라고 여겨지던 그 학교의 총장까지 지내고 나서 명예교수라는 직함으로 대학원에서 한 과목을 가르쳤다.

당시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의 수업은 늘 새로운 학문에 대한 탐구로 가득했다.

노교수가 아직 번역조차도 되지 않은 '뇌과학(Brain science)'에 관한 원서를 번역해 가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야를 만들어주려고 애쓰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30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일이다.

그가 수업시간에 언급한 내용들에 대해 참고문헌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최근에 발간된 것들이어서 존경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지도교수는 그 노교수의 제자였고 나는 그의 손자 제자뻘쯤 되는 셈이었다.


내 지도교수와 나의 관계는 연구실의 다른 학생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돈독했다. 일종의 편애가 있었다.

하지만 교수는 내 논문 주제에 관한 나의 설명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 논문의 주제를 정해주었다. 예상대로 본인이 쓰고 있던 의장론 책의 한 꼭지였다.


지도교수가 석사논문을 정해주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석사논문이 그 연구실의 기존 논문과 맥을 같이 해야 하는 것도 절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왕이면 지적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해보고 싶었고, 이를 교수에게 설득하기 위해 며칠 동안 리포트를 준비했다. 하지만 내 얘기를 제대로 들어 보지도 않는 교수의 태도에 많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훗날 나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적어도 학생의 진지한 발언은 경청해 줘야 하며 그에 대한 반박의 이유도 성실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때로는 내가 모르는 것을 학생이 가르쳐주기도 한다.

모름지기 선생이라면 그런 순간을 강의실에서 얻는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어느 학생이 교수인 나와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견해를 설명하는 것. 그리고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대학교육의 전부이다.


결국 나는 매우 평범한 주제의 논문을 쓰고, 지도교수가 원하는 대로 그 주제로 작품을 설계해서 공모전에 출품하고 상을 받느라고 1년을 고생한 뒤 학위를 받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쥐라기공원을 책으로 읽으면 생기는 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