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과 일상
학생시절에 양자역학과 해체주의 건축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이때의 많은 독서와 사색은 이후 나에게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학자의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연구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 이후에도 흥미는 늘 유지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관련된 책이나 콘텐츠가 보이면 관심 있게 보게 된다.
양자역학에 대한 독서를 좀 했다고 아원자물리학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파인만조차도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할 정도이니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할 필요가 없다. 또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 출발하든 노장사상에서 출발하든, 소위 '신과학운동(New science movement)'에 포함된 흥미로운 이야기로 한 번쯤 머리를 샤워하고 난 후에는 세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습성을 지니게 된다.
소위 세상의 비선형적인 본질에 대한 이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몇 개의 사소한 일면을 본 것뿐인데 그 대상의 본질이 파악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직관적 파악'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그전에는 '저 대상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데 내가 파악한 것이 정확하겠어?'라고 의심했다. 하지만 그 양자역학 공부 이후에는 '오히려 그것이 맞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확신은 금물이다. 늘 '확신'을 '조심'해야 한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다 읽은 사람보다, 몇 권의 책만을 읽은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더 정확한 설명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양자역학을 알고 나서 하게 됐다.
지식과 지혜 더 나아가 지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친구가 있었다.
우리 둘 다 총각이던 시절이었는데 그 친구는 한 여자와 진지하게 사귀고 있었다. 훗날 그 친구는 그때의 여자친구와 결혼한다.
둘이 사귀던 시절에 나는 그의 여자친구를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 친구로부터 그녀와의 연애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었다.
하루는 술을 먹으면서 친구가 심각하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심각한 위기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 사연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는다.
얼핏 기억하기로는 이 친구가 선의로 그녀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그녀의 화를 돋우게 되었고 이를 만회하려고 한 그다음의 행동에서 더 심각한 갈등이 생겨버렸다는 것이었다.
남녀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누가 봐도 이 친구가 잘못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듣고 있던 나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김형, 나는 그녀의 반응이 이해가 되는데?"
그가 나의 조언을 구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왜?" 그가 물었다.
"김형한테 들은 몇 가지 얘기로 그려지는 그녀의 모습은, 예를 들면 사과나무인데 김형은 그녀를 복숭아나무로 잘못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는 지금 붙인 예이고, 그때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성격으로 말했었다.
그가 불쾌해하지 말기를 부탁하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만약 그녀가 김형이 생각하는 복숭아나무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사과나무라면, 그녀의 반응이 이해되지?"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만..... 아니 사귀고 있는 내가 그녀에 대해 잘 알지, 어떻게 얼굴도 못 본 진형이 나보다 더 잘 알겠어?" 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였다.
"그냥 재미 삼아 말해볼게. 둘이 이런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는 그녀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아? 그리고 김형은 그녀의 그런 행동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고."
하면서 서너 가지의 상황들 즉, 그가 내게 전혀 언급한 적이 없는 둘만의 상황 몇 가지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가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맞아, 난 그럴 때마다 그녀가 정말 이상하거든. 그런데 진형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그렇게 그려지던걸."
그녀의 사주를 알지 못하니 내가 신통한 것은 분명히 아닌 것이고, 그녀를 만나 본 적이 없으니 예리한 심리학자가 아닌 것도 분명했다. 다만 그가 말한 연애담 몇 개를 들으면서 그려진 그녀의 모습을 말한 것뿐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가 그녀의 모습을 전혀 못 그려내는 것이 더 이상했다.
이런 종류의 일도 있다.
생물학과 대학원을 다니던 후배가 술자리에 꼈다. 자주 보는 후배는 아니었다.
후배는 석사논문의 주제를 정해서 한참 쓰고 있는데, 전체 논문의 얼개를 잡지 못해서 고민 중이었다.
마침 그 자리에는 그 후배의 생물학과 대학원 선배이면서 동시에 나의 건축학과 대학원 후배이기도 한 독특한 경력의 후배가 있어서, 둘이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발생학 관련 논문 쓰기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왠지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내가 거들었다.
"논지의 전개를 이렇게 하고 결론은 이런 식으로 유추하는 것은 어때?"
둘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형, 천잰데?"
그 후배는 그날 술자리에서 논문의 얼개를 잡고 무사히 논문을 마쳤다고 했다.
이와 유사한 경험이 경영학과 후배와의 사이에도 있었다.
군대에서의 얘기다.
한 내무반에 서른 명씩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을 가둬놓고 30개월 동안 하기 싫을 일들을 시키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즐거움보다는 괴로움이 더 많은 생활이었다.
압착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밀착된 생활을 하니 저절로 동료들의 심리상태가 보인다.
독심술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여기저기에 그런 심리의 표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좋은 표징일 때는 상관없지만 불안한 표징일 때는 걱정이 된다.
어느 정도 선임이 되고 나서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해당 병사와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의논한다.
"아무개 일병이 요즘 이런 고민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알고 있지?"
그들의 눈이 커지며 "아니요, 전혀 몰랐는데요?" 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해당 병사를 불러 대화를 나누면 거의 내 짐작이 맞았다.
그리고 그 대상은 나의 후임뿐만 아니라 선임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위에 예를 든 일들은 살면서 수도 없이 겪는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마치 선승들의 선문답 비슷하면서도 대화가 즐거워진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비선형적 이해가 발달한 사람들이다.
쉽게 '직관'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인데, 직관이 과학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학문이 양자역학이다.
* 이 논리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AI도 빅데이터 학습보다는 추론의 능력이 향상될것이라는 것이다.
전기를 하마처럼 먹는 데이터센터는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본다. 이 얘기는 데이터 처리를 주로 하는 NVIDIA의 칩 보다는 inDivice 칩을 개발하는 회사가 더 유망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