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지 Mar 22. 2024

나라는 존재

백은선, 나는 내가 좋고 싫고 이상하고


이 책을 추천받았던 것이 딱히 유쾌한 이유는 아니었으나 아주 좋은 책을 읽었다는 명백한 결론에 도달했다이 책을 완독하기 위해서 나는 조금씩 천천히 계속해서 시간을 냈기 때문에 읽는 중, 또는 읽으면서라고 적은 적이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나의 독서 생활은 꾸준히 한 책을 한자리에 앉아 완독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글들을 그때그때 읽으면서 음미하고 그것들을 내 나름대로의 키워드 창고에 넣어두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주를 이루게 되는 나의 생각은 여성, 자기혐오, 그리고 나이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보다 촘촘하게 다양한 역할로 표현한 글이었다. 양육자이면서 한 명의 여자이면서 동시에 돈을 벌어야 하는 사회인이면서 그냥 사람 그 자체인 작가의 글을 볼 때마다 나는 각각의 상황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을 생각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또는 여성으로서 발화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이 글에서는 이 모든 것을 해내고 또는 겪으면서 살아가는 여성이 있다.


무엇보다 이번에 다시 이 책을 펼치면서 다루고 싶었던 주제는 자기혐오이다. 나도 끔찍한 자기혐오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냥 내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고 싶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을 때가 있다.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에, 또는 이유가 너무나 명징하기 때문에 죽고 싶은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나는 죽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간혹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물론 그것이 좋다고 할 사람은 없지만, 누군가 자살을 한다면 그 사람의 용기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와 이어서 생각에 대한 글을 쓴 부분이 있는데 너무나도 내가 떠올린 것들과 맞물려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게다가 과거의 내가 생각이 너무 많아 이것을 끝내기 위함을 상상할 때 위험해, 라는 말을 떠올리며 샤워를 하고 필사를 하며 기분 전환을 통해 그래도 살아야 함을 상기하던 것을 다시 복기하게 했다. 오히려 관련된 내용이나 감상을 적나라하게 써 놓아서 오히려 그냥 그럴 수도 있구나 해 버릴 수 있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멈춰야지, 라고 생각을 해야 멈출 수 있는 사람들이 나를 제외하고도 굉장히 많다는 점에 묘한 위안을 얻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생각하는 일이 많다. 다 소용이다. … 생각 속의 생각을 생각에게 의탁하며 생각이 가는 방향도 모르는 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무서운 일이며 생각은 질병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며 … / 생각병, 생일병 


소제목으로 치면 다섯 편 정도를 읽고 나니 마음이 가벼우면서 또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그만두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피곤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내 생각의 흐름을 내가 잘 탈 수는 없는 것일까? 흐름을 그대로 하면서 파도에 몸을 맡기는 일처럼 말이다. 물론 백은선 시인도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파도>라는 키워드를 썼는데 내 생각의 흐름을 잘 탈 줄 아는 것도 일종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 가지 면만 가진 사람도 없고 한 가지 성격만 가진 인간도 없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슬프고 기쁘고 이상하고 안도하고 그런 반복을 계속해서 들락날락거리는 게 내게 남은 삶을 탕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것은 나뿐이야. / 마음이라는 거 요상한 그거


마지막으로 나라는 존재를 오롯이 바라보고 나의 심연으로 깊이 파고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나는 내가 싫고, 싫어서 혐오라는 단어와 맞물리게까지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내가 가끔은 좋고 안쓰럽기도 하다. 또는 그런 점이 나의 장점이고 나라는 사람의 성정이며 특색이기까지 하다고 주장하고 싶을 정도로 나를 증명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사람은 어쩌면 평생 나라는 존재를 탐구하면서 또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지나온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보다 현재의 이런 나의 모습이 나의 생활과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