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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애미 Jul 02. 2024

너를 믿는다면서 , 엄마는 항상 불안하지( #1)  

매일, 매주, 매달, 매년 - 아들이 커가듯이 엄마도 자란다.

두 달 전에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과 후 수업시간인데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임을 알기에 첫마디에 나는 ' 어 - oo야 왜? ' 

'엄마 내가 가서 얘기는 할 텐데 오늘 내가 oo를 한대 쳤어. 근데 나 때문에 시작된 건 아니고 oo가 내 폰을 열려고 하다가 잠겼고 나보고 North Korean이래'.

해외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한두 번은 들어봤을 법 한 질문 - '한국인이면 남한이야 북한이야?'

아이는 이 질문을 너무 짜증 나했고 , 나는 어느 교수님의 강의시간에 한 한국인 여학생이 똑 부러지게 대답했던 내용이 스쳐 지나가면서 또 한 번 한숨이 나왔다. 

이게 우리 집 아이는 상대 아이를 칠 일이었던가.. 

남한이냐 북한이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그게 악의적인 질문으로 들리지는 않지만 무지한 질문으로 들릴 뿐이라던 그 여학생은 어쨌든 이 집의 아이보다는 나이가 있으니 좀 더 현명한 처신을 할 수 있었겠지..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아무튼 아들 녀석은 잠긴 핸드폰도 속상한데 , 무지한 (?) 얘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손을 쓰고야 말았다. 

그런 아이를 가슴으로도, 머리로도 이해하지만 입으로는 한숨이 나오게 된 나의 8년을 돌아보면 

아이가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니는 이 시간까지 크고 작은 사건사고 (?) 속에서 나 역시 학습된 것인가? 

전화를 끊고 바로 먼저 헤드 (우리나라에서는 학년주임)와 담임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저 단 한마디 -

' 미팅합시다 , 당신이 시간이 되시는 언제라도'

보통 학교라는곳 ,더군다나 각나라의 인종이 모여있는곳에서 문제가 났을때는 학교에서 전화가 오지않기를 ,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하나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데 ,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가끔은 부모가 먼저 제안하는것이 나로서는 수월했고,

따지고 화를 내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들과 나는 아이를 두고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것임을 공유한다면 나쁘지 않은 과정이었던 것 같다.  

해외생활 9년 차에 접어들면서 아이의 선생님들과 주고받던 그 수많은 이메일들과 미팅자료들은 어느 순간 내가 소중하게 모아 온 아이의 사진들보다 더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유치원 때는 아이의 마음을 주고받았고 , 

초등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원하는 행동양식에 맞추어 선생님들과 공유하기를 노력했고, 

중학교에 올라오며 고군분투하는 아이를 대신해 대변해 줄 수도 끼어들 수도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는 시간을 통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절한 기회를 보는일. 

마흔남짓까지 다국적기업에 근무하면서 배우고 익힌 관계들, 감정을 접고 업무에 충실해야 했던 그 수많은 날들은 내가 국제학교 선생님들과 아이와의 사이에서 학부형으로 살아내기(?)에 충분한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나 싶다.

아이가 여러 인종을 상대하며 성장할 때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들 - 

부모가 함부로 나서지 않을 것 , 그러나 물러섬 없이 받쳐줄 것 - 나는 이 두 가지를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OO야 엄마아빠가 너를 사랑해 

OO야 네가 배운 대로 기본을 지켜. 기본은 지켜야 해. 

OO야 기도할게. 네 어깨를 꼭 잡아주실 거야.


이 메시지를 매일 아침 주고받으면서도 어미로서 나의 가슴은 쿨한척하면서도 매 순간을 롤러코스터 타듯 지내왔던 것 같다. 

아무튼 , 다소 억울함도 있었을 아이의 다사다난했던 2년을 참아내고 만든 파일을 가지고 나누었던 헤드와의 미팅은 그들이 아이를 이해하는데 좋은 한방 (?)이었다. 

그들과 미팅 내내 겉으로는 마치 , 내 아이 남의 아이를 구분하기 전에 아이들이 서로 실수로서 배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건 나의 변함없는 의지라며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건 손을 쓴다는건 잘못된 것이라고 

(마음속으로는 시작은 누구였을까요 라고 좁은 속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 

고상한 척 두 시간의 미팅을 마무리했으나,

집에 오는 내내 쿵쿵거리던 내 가슴은 진정이 되기에 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 학교에서 검토한 결과로는 이 행동만으로는 더 진행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시어  

' 한 대 쳐버린 ' 아이의 사건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 아이도 부모인 우리도 또 한 번 배우게 된 시간이었다. 

내가 만약 단순히 

' 우리 아이가 손을 쓴 데는 이유가 있었다 '라고 했다면? 

' 우리 아이도 피해를 받았다 '라고 했다면? ' 저 아이가 시작했다 '라고 했다면? 

' 학교가 도움을 못주었다? '라고 했다면? 

나는 아마 아이와 함께 힘든 시간을 매번 새롭게 시작해야 할 수도 있었겠지. 

학교를 다녀와서 우리는 아이와 긴 대화를 나누었고,아이도 긴 얘기에 수긍하는 시간이었지만 

우리의 아침인사는 한 문장이 더 늘었다. 

'OO야 당당하고 담담하지만 유머있고 고상하게 '

라고...

15년간의 다국적기업과 3년간의 해외근무로 배운 방대한 (?) 데이터는 그들을 감성소설이 아닌 팩트로 이해시키기에 부족하지는 않았나 보다. 


OO야. 부디 엄마의 업무 (? )를 늘려주지는 말아 줘.... 


주변에서 권유를 할 때는 사실 먼 얘기 같았는데 , 작은 세계라면 그들이 세계라는 학교라는 곳에 

해외에서 아이가 커가면서 겉과 속을 파악해면서 있을법한 스토리와 해결방법들을 공유해 달라는 얘기를 들어보니 , 한 발 한 발 갖가지 스토리를 가진 이 아이의 얘기가 어쩌면 그들에게 위로도 , 용기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드는 날이었다. 

그래도 커가는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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