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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애미 Oct 27. 2024

' 적당히 '라는 말이 참 어렵던데?

엄마도 그 말이 생각처럼 쉬울 거라 생각 안 해 

살아가면서 어떤 단어나 문장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순간이 있듯이 , 어제저녁 어떤 드라마를 보다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관계가 하루아침에 희미해졌다'는 말이 내 귀에 훅 - 들어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 아이를 키우면서 아니, 불과 1-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크게 와닿지 않았던 말이었을 이 말이 시간이 갈수록 참 낯설지 않다. 

나에게는 이미 서른 살이 넘어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조카가 있다. 그 아이가 청소년기를 넘어 청년이 되는 동안 나의 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하며 이제 그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지만 겪지 않고는 모르는 시간들을 보냈던 언니와 조카의 화려한(?) 사춘기 시절을 나는 언니를 위한답시고 한 마디씩 던졌던 기억이 있다. 

'적당히 좀 내려놔 - OO가 고마워할 것 같아? 왜 스스로 들들 마음을 볶냐? ' 

그때마다 언니는 ' 니 자식은 잘 커야 하고 잘 크겠지, 그런데 너도 키워봐라'라고 한마디로 일축할 때마다 나의 옹졸한 마음으로 '뭐라니? '라고 돼 받아쳤던 그 시간들은 벌써 10여 년이 지나버렸다. 


적당히
 

무난하게 생긴 이 단어가 절대 쉽거나 무난하지 않은 단어라는 생각이 최소한 나에게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아이가 이 타국에서 살아온 시간들이 어느덧 그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의 두 배가 되었다.

8학년이 된 지금까지 나의 이메일 폴더는 아이가 다녔던 두 학교의 이름으로 각각 나눠져 있고, 그 학교 안에는 선생님성함이 각각 나눠져 있다. 고맙게도 아이가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고 10여 년을 다녔지만, 분명 내가 그 폴더들을 나누어 놓은 데는 '적당하게 넘길 수만은 없던 ' 크고 작고 소소한 일들이 순서대로 있었기에 잊어버리기 전에 내용들을 넣어놓았던 습관이었다.

어찌 보면 너무 소소해서 내가 몰라도 되는 내용들을 접할 때는  ' 왜 이 아이는 매일매일 브리핑(?)을 해서 어미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나' 짜증스러웠던 날들도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적당히 좀 잘 넘어가면 안 돼? '라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단어를 던지기도 했다. 

지금 그 폴더들을 열어보면, 어릴 적부터 생활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인종과 성향을 가진 그들만의 작은 사회 속에서 아이가 대면했던 소소한 일들부터 그 나이만큼 견디고 적당히 넘기려다가 어미에게 털어놓았던 일들까지 많은 내용이 담겨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어떤 상황을 접할 때마다 혼자 ' 적당히 넘기지 않고 ' 미리 털어놓던 그 습관 덕분에 나는 선생님들에게 미리 미팅을 요청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무난히 해결해 온 듯하다. 

차라리 내 아이가 무조건 맞다고 믿거나, 힘들어할 때 무조건 나서줄 수 있었다면 나 역시 적당한 에너지를 쏟으며 지냈을 텐데, 억지로라도 부모로서 학교의 방향을 기억하고 있는지 , 목적은 싸움이 아니라는 것과  네 아이 내 아이를 가르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앞세워 풀어내야 했던 모든 시간들은 결코 적당할 수도 , 내가 여태껏 살아온 자신감을 보여줄 수도 없는 그저 아이의 시간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가 먼저 실수한 일이든 , 아이가 가슴이 먹먹했던 일이든 간에 학교와 우리는 마치 한 부서에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업무 하는 사람들 같았다. 

   

감성에 충실한 우리나라의 좋은 정서가 가끔 어느 곳에서는 감정적이라는 오해가 먼저 나와서 일이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해외거주자로서 종종 느끼기도 하기에, 

모든 대화와 이메일의 시작은 ' OO와의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라는 무미건조한 운을 떼기까지 , 어떤 일을 이로부터 듣는 순간부터 아이는 어떻게 움직였는지,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고, 여기서 무엇을 느꼈고, 이제까지 배운 '기본태도'는 기억하고 있는지 모든 걸 미리 정리하는 시간들을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10여 년을 지냈던 것 같다.


아이가 지난주 전지훈련을 가면서 공항에서 불쑥 던지는 한마디에 그래도 괜찮게 지냈구나.. 느껴졌다. 

'엄마, 학교에서 손부터 올라가고 respect 하지 않는 애들 보면 꼭 되게 스트레스받는 애들인 것 같아'

'스트레스가 없을 수는 없지 , 잘 풀어내는걸 미처 못 배웠겠지.'

이 말이 나오기까지 결코 적당할 수 없던 시간들..


분명 부모로서 만드는 미팅자료들과 공들인 시간들은 퍼포먼스도 인정을 위한 것들이 아니라서 가끔은 울컥증과 뿌듯함이 공유되지만 아이와 우리의 겹겹이 쌓고 쌓아냈던 시간들은 단 한 번에 던지는 단어들이 아니었고 , 한 문장을 위해서 고민하고 고민해야 나올 수 있었고 '적당히' 넘겨 될 일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기에 아이에게 가끔 짜증 섞인 말로 ' 적당히 좀 할 수 없었니? '라고 던졌던 말들과 10여 년 전에 언니에게 던졌던 ' 적당히 좀 내려놔 '라고 던졌던 무책임한 말이 그들의 가슴에는 울컥 자리 잡았을 수도 있겠구나... 문득문득 느껴지곤 한다. 


누군가 나에게 ' 친구야 니 인생을 좀 살아. OO의 인생에 온 신경을 쏟는 시간을 적당히 내려놓고 '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내가 보아왔던 그 친구는 , 아침에도 오후에도 밤에도 아이의 학교와 학원과 방과 후 활동들에 대한 스케줄표를 들고 다니는 부모이기에 나의 대답은 그저 ' 응. 생각해 줘서 고마워 '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 친구와 내가 다르다고 할 수없고, 방법이 다를 뿐 쏟는 시간이 결코 나의 그 시간보다 적지는 않은 듯한데 ' 적당히 '라는 말로써 온 신경이 아이에게만 있는 어미가 되고야 말았다.

결국 오랜 관계가 어느 순간 희미해진 시점은, 무심한 충고 때문인지 우리들의 나이가 이제 그런 나이이기 때문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아이가 다 성장해서 그 이후에 적당하고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착한 거리를 둘 수 있도록 

지금 입을 열어 하루하루의 에너지를 쏟아내어 주고 같이 고민하게 해 주는 아이에게 감사하며 현재의 남은 사춘기의 시간들과 몇 년의 청소년기시간들을 힘들게 같이 보내줄 것이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어떤 부모에게도 최소한 적당히 하라는 말은 좀 더 신중하게 쓸 것 같다.

넘치게 집중해서 쏟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나중에 넘치지 않기 위해서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과정> 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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