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애미 Aug 27. 2024

다양한 경험을 하라면서요?

그때는 그랬는데....

아이가 세 살 때였나? 그저 오물오물 떠드는 정도의 단어조합이나 나열하던 때였던 것 같다. 집에서 놀던 장난감을 만지다가 내뱉은 한마디 ' 씨 (정확히는 ㅊ 을 겹쳐내는 발음이었던 듯) - '라고 내뱉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을 읽었는지 갑자기 고개를 끄떡끄떡 거리며  ' 씨씨 씨를 뿌리고 - 물물 물을 주었죠. 하둣밤, 이틀밤 툭 툭 툭 ( 쑥쑥 쑥 - )  - '이라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노래로 나름의 방법을 동원하여 위기(?)를 모면했던 시절이 오늘은 참 그립다.

그 시절 그 아기의 눈과 귀에 ' 나쁜 말 좋은 말, 예쁜 표정 미운표정'이 정확히 보이고 들리던 시간을 거슬러, 어젯밤 14세 질풍노도 아들의 ' 씨 - ' 소리가 참으로 살벌하기까지 했던 저녁이다.


새 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서비스항목 외에 스포츠와 여러 가지 각자의 성향에 맞는 방과 후 액티비티를 신청을 하는데, 아이는 어차피 새벽과 저녁에 수영을 해야 해서 선택의 폭이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별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럭비를 시작하겠다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참 예측이 불가한 청소년이라지만, 약 한 달 전에 본인은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 수영팀에서 무조건 현재의 기록을 당겨놔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내던 방학 내내 수영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며 시간을 쏟고 돌아와서 , 갑자기 럭비라니...


8학년(중3)의 아이라면 이제 서서히 우리가 얘기하는 수학, 과학 등등의 이야기로 바빠야 하는 시간들이지만, 공부는 곧 하겠다는 핑계(?)보다도 , 럭비를 시작하겠다는 말을 내뱉는 그 순간 나는 버럭 화를 내고야 말았다.

3년을 하루같이 쿨한 척, 관대한 척, 느긋한 척 얘기했던 부모의 모습은 다시 한번 일그러지고 ,

'네가 행복하면 해'

'네가 할 수 있는 걸 찾으면 그걸 해 '

'네가 노력하는 그 정신력으로 뭐든지 시작해'

.

.

이 예상을 뒤집은 나의 대답은 '미친 거야?' 한마디였다.

3년을 하루같이 쫓아다니면서 각종 대회에 트레이닝, 물속에서 조차 손가락과 고관절이 다치면서까지 버텨온 그 시간들이 생각나서일까? 아이의 결정에 ' 네가 행복하면 해'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치면 어떻게 할 건데?'

'넌 왜 그렇게 즉흥적이야?'

'럭비에 손가락이라도 안 다친 아이가 있다니?'

'럭비 하다가 다쳐서 수영도 못하면? 그 스트레스는 누구한테 풀건?'

극과 극을 달리는 부모의 말에 질려서인지 아이는 한마디 지르고 들어가 버렸다.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라며!' 그리고 바로 나오는 감탄스럽지 않은 감탄사 ' 씨 -! '...


너는 세 살 때도 씨 - 소리의 민망함을 몸으로 느끼고 노래로 승화할 줄도 알았는데..

순간  네가 던진 씨 - 소리가 어찌나 귓가에 맴맴 돌던지...

쫓아가서 씨-소리가 들어가게 혼낼까? 아니면 울컥하고 떠들까? 또다시 자칭 떠들던 대범한 엄마는 아이의 마음보다 세 살 적 '씨-'와 지금의 '씨-'가 어찌나 다른지 회상에 젖을 뿐 ,

갈길은 아직도 멀고 이제 시작인데 , 자식이 던지는 말에 벌써부터 일희일비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지만 머릿속에서 '그래도 럭비는 아니기를'을 되뇌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미..

이제까지  '네가 행복하면 그렇게 해'라는 말이 참으로 온전한 진심은 아니었나 보다.

저 방문을 열까, 다시 한번 다짐을 받을까, 아니면 해보라고 할까 ,, 고민하다가, 최소한 정신 있냐 따져 묻기 전에 우리가 행복하게 공들였던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떠올려 다시 한번 얘기해야겠다 다짐하고 잠이 들었는데 , 오늘 새벽 학교 가는 길에 아이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그것도 새벽 5시 47분,이제는 힘들다던 수영을 가는 길에..

평소에 보내는 내용과 더불어 어제의 태도에 대한 사과를 담아...

오늘도 나는 너그러이 품어주는 어미이기 전에 아이의 사과를 먼저 받고서야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모자람의 소유자가 되었다.

아직 이틀의 시간이 있으니, 아주 조금이라도 아이의 오락가락 결정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내어주고

새 학년을 시작하게 해야겠다.

혹시라도 결정이 수영으로 다시 돌아선다면 오후 트레이닝까지 하고 오겠지,,소심한 기대와 함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건 어렵지만 , 한 번에 화내지도 결국 틀어지지도 않는 부모로 거듭나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의 딸 - 아들의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