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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애미 Jul 25. 2024

아빠의 딸 - 아들의 엄마

해마다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번 짐을 싼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 싸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일주일은 아주 큰 잘못이 아니면 너그러이 서로서로 용서가 된다. 곧 나에게는 부모님, 아이에게는 조부모님을 만날 날이 다가오니까.

금년여름은 아이가 여름방학을 하고 수영트레이닝을 받느라 2주가 지나서야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해외생활에서 가장 빈번한 약속 중 하나는 '한국 가서 하자! 한국 가서 사자!'

금년도 어김없이 아이의 꿈에 부푼 요구사항 몇 가지를 나는 그 한마디로 버틸 수 있었다.

' 어 - 그럼! 물론이지~ 한국 가서 하는 게 낫지 '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집으로 오는 길은 항상 싱그럽고 무더운 여름이라도 마음만은 서늘하기까지 한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도착하는 공항과, 집에 오는 차 안, 크고 작은 선물꾸러미를 펼치는 첫날을 제외하고는 내가 약속했던 그 수많은 호언장담도 , 설렘도 하나- 둘 희미해지고 아쉬움으로 떠나게 되지만, 그래도 나를 기다려주시는 부모님이 아니라면 손꼽아 기다릴 날들이 얼마나 될까...


금년여름이 시작되는 6월쯤, 전화기를 좋아하시고 단 한 번도 전화를 못 받으신 적이 없는 아버지는 자주 전화를 못 받으셨다. 나는 부모님에게 막내딸로서 투덜투덜 대며 왜 나의 전화를 피하냐며 투덜대곤 해 왔다.

7월 초에 한국에 도착하고 다음날, 아버지는 그 좋아하는 간식도 마다하시고 , 카페에 앉아있는 게 제일 좋다고 , 카페에서 일어나자고 하면 왜 벌써 일어나냐는 허세(?)스러운 농담도 하지 않으셨고, 낮에도 방에만 계셨고 낮을 주무시는 것도 티브이를 보시는 것도 아니고 뭔가 힘든 모습이셨고, 9시만 되면 문 닫고 들어가셨지만 , 11시에는 나오셔서 한잠도 못 잔다 하셨고, 어쩔 때는 새벽 두세 시에도 옷을 입고 나오셔서 우리가 ( 주로 내가 ) 크게 화를 내기도 했다. 왜 그러냐고,,,

아침만 되시면 한두 시간도 못 잤다고, 미치겠다고 하셨고, 그때마다 나는 못 자면 안 자면 되고 왜 스스로 그렇게 문제화를 시키냐고 화까지 냈다.

엄마도 어쩌면 항상 즐겁고 강하기만 했던 남편이 , 잠을 못 잤다 힘들어하는 남편이 먼저 안쓰럽기보다는, 멀리서 온 자식에게 핀잔을 듣는 남편의 모습 더 민망하셔서인지 아버지에게 더 화를 내시기도 하셨다.

나중에 말씀하셨지만, 화를 내는 딸 앞에서 조용히 고개 숙이시는 남편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하셨다고...


그렇게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국에서의 7월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 카페에 앉아계시던  아버지는 내과를 가시겠다고 일어나셨다. 그 순간에도 잠으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모르고 무지하기 그지없던 나는 아버지에게

'가 봐 그럼, 이렇게 온 가족 동원시키는 시간이 지금 어떤 건지 아빠가 잘 지켜봐!'라고 어쩌면 패륜에 가까운 막말을 해대며 병원에 갔지만 , 수액을 맞으시던 아빠의 상태는 좋아지시지 않았고, 결국 다니시던 종합병원에서 수면제를 포함한 약 몇 가지를 처방받고 나서야 처음 잠드실 수 있었다.

수면제를 먹고 나서는 절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만 믿고 있던 우리들은, 잠을 좀 자고 싶다고 낮에라도 먼저 먹고 그냥 하루는 안 움직이시겠다던 아버지의 요구에 또 한 번 갖은소리를 다 하며 아버지의 정면에서 화를 토해 내고야 말았다.


자식 놈에게는 감정을 조절하라고 , 네 편을 만들라고 , 태도를 운운해 가며 잘난 척을 하던 (?) 어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 앞에는 아버지를, 등 뒤에서는 자식을 두고 나는 마치 더 이상 미친 모습이 없을 정도로 화를 던지고, 막말을 던지고, 구겨진 인상을 던지고, 무서운 협박을 던져냈다.

지금 생각하면 '패륜'이라는 단어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상황을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토해 냈을까?

가족이 가장 잔인할 수 있다더니...

결국 나는 아버지를 위한다면서 , 뒤돌아보면 여느 때와 다름없던 여름휴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황한 것이었고, 작년과는 다른 모습의 아버지가 너무 낯선 것이었고, 잔뜩 기대를 하고 왔다가 사뭇 다른 분위기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에 당황한 아들아이의 모습에 더 당황했던 , 나의 이기심이 먼저였던 나쁜 딸일 뿐이었다.

차 안에서도 , 방에서도 , 그 좋아하시던 카페에서 조차도 나는 내 감정이 먼저였고 , 감정조절을 강조했던 어미의 모습은 없었기에, 힘들어 늘어지시던 아버지의 수면장애도 결국 그 수많은 감정뒤에 두었던 나는 그 순간, 아버지의 나쁜 딸, 그리고 아들의 위선적인 엄마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는데 , 아들아이가 나에게 하는 몇 마디에 얹혀서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미안해... "

"I think it is natural, mom. This is life, I think."라고 ,,,,대답을 시작한 아들은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럴 수도 있지 , 그런데 엄마가 공공장소에서는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고 하면서 , 엄마는 이모션을 조절도 안 했고, 엄마의 아빠잖아.. 엄마는 엄마의 아빠한테 왜 그렇게 rude 하게 해? , 할아버지가 제일 힘들지."

단순한고 당연한 이 모습을 나는 왜? 아빠의 딸로서는 지켜내지 못했을까..

어쩌면 아버지가 계신 지금도 , 아버지가 안 계실 언젠가 이 순간을 떠올리면 절대로 나 자신을 너그러이 이해해 줄 수는 없을 듯하다.


한국에 들어온 2주가 두 달을 넘긴 듯 길게 느껴질 정도지만,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해 봤다면서 , 50년 이상을 강한 아버지로 버티고 버티다가 잠으로 힘들어하시는 그 시작부터 도움은커녕 또 다른 마음의 무게를 드린 딸.

어이없게 아버지에게 소리치며 막말을 해댔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 모자란 어미.

한없이 내 옆에서 강하게 계시던 부모님의 연세가 85세, 79세라는 현실을 인식하며 새삼 참 먹먹하고 죄송하다. 마음을 담아 사과드리고 정신 차리고 지내도 2주밖에 안 남았다는 현실에 한 번 더 내려앉는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딸에게 ' 야! ' 소리 한번 안 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드릴까 하니까 , 아들아이가 안아 드리라고 한다.

내일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토마토수프를 양배추 잔뜩 넣고 끓여야겠다.


모자란 딸의 모습을, 할아버지에게 우악스럽던 어미의 모습이 두 사람에게 잊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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