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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이어지는
우리 사이의 이야기'

"어쩌다 꺼내 본 엄마와의 기억 하나. "

by 투망고

사람들은 내가 서글서글하고 친화력이 좋다고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좀 다르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좋아하지만, 가족 안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
이상하다.


감정을 표현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은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서툴다.

돌아보면 우리 엄마도 그랬다.
나는 외동딸이었고, 엄마는 나를 단단하게 키우려고 애쓰셨다. 사랑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 많으신 분이었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이 서툴렀다.
어릴 적 외로웠던 감정이 기억난다. 칭찬도 인색했고, 마음을 나누는 법도 익숙하지 않았다.
이제는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하지만, 그 어린 날의 아쉬움은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나도 남편과 아이 앞에서는 여전히 미숙하다.

아이들과의 미술 수업에선 아이들의 마음을 열고 감정을 표현하도록 돕는데, 내 아이와의 대화에선 오히려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

이게 늘 내 안의 묵직한 짐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큰아들과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관을 종종 다녔다. 짧은 시간, 소소한 대화. 당시에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들이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특별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런 순간들이 우리를 조금씩 이어주고 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오래된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다섯 살 즈음이었을까. 엄마와 앙드레김 패션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엄마는 평소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아니었지만, 아마 누군가에게 티켓을 선물 받으셨던 것 같다. 롯데호텔이었던 것 같은데, 반짝이는 조명, 화려한 접시에 담긴 그림 같은 아이스크림, 그리고 무대 위의 모델들.
어린 내게 그날은 너무도 신기하고 아름다운 경험이었다. 아직까지도 종종 떠오르는 특별한 기억이다.

부모님은 예술적 재능이나 관심, 열린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부분이 늘 아쉬웠다. FM성향이신 아빠와 묵묵한 엄마가 나를 좀 더 자유롭게 키우셨더라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열린 사람이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 글을 쓰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그때의 그 경험도 지금 내가 예술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데 작은 씨앗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씨앗을 심고 있다.
아들과의 작은 경험, 아이들과의 수업 속에서 감정을 나누는 찰나들 속에서.

서툴고 어설프지만, 우리는 그렇게 서로 연결되고 있었던 것 같다.

쓰다 보니 이런 걸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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